그리스에서 출발한 유럽 재정위기가 남유럽을 넘어 동유럽 국가로 전염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빠르게 번지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불거졌던 동유럽의 디폴트(국가 부도) 위험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등으로 지난해 중반 잦아들었으나 1년 만에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번엔 헝가리다. 최근 집권한 헝가리 새 정부 관계자들이 전임 정권의 재정적자 통계에 의문을 나타내면서 스스로 디폴트 가능성까지 내비친 것이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신임 총리의 대변인인 페테르 시여르토는 지난 4일 기자회견에서 "헝가리 재정적자 문제가 이전 정부가 밝혀온 것보다 훨씬 나쁜 상태"라며 "국가 디폴트 가능성이 과장된 것만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전 정부의 경제지표 역시 믿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헝가리는 지난해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4.0%에 불과하고,IMF와 합의한 올해 목표(GDP의 3.8%) 달성이 순조롭다고 강조해 왔지만 실상은 GDP의 7.5% 수준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헝가리 새 정부가 집권 일주일 만에 국가 부도 가능성을 언급하자 국제 금융시장은 충격에 휩싸였다. 유로화 가치는 4일 '유로당 1.1967달러'로 1.20달러 선 아래로 추락했다. 유로화가 1.20달러대 아래로 내려간 것은 2006년 3월 이후 처음이다. 미국 다우존스지수도 이날 3.15% 급락하며 10,000선이 재붕괴됐다. 나스닥지수는 3.64% 떨어졌다.

경제 규모가 유럽연합(EU) 27개국 중 18위밖에 안 되는 헝가리가 글로벌 시장을 뒤흔든 것은 세 가지 우려감을 고조시켰기 때문이다. 유럽의 경제위기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6개국)에서 비유로존으로 △남유럽에서 2004년 뒤늦게 EU에 가입한 동유럽으로 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그것이다. 그리스에 이어 동유럽에서도 허위 통계 논란이 부상하면서 "믿을 만한 나라가 없다"는 인식이 퍼진 것도 시장의 불안감을 부추겼다.

헝가리 정부와 EU 관계자들은 5일 "헝가리의 디폴트 우려는 과장된 표현"이라며 불끄기에 나섰다. 무디스도 "헝가리는 제2의 그리스가 아니다"고 거들었다. 하지만 헝가리가 기름을 끼얹은 '불신의 불'은 쉽게 꺼질 것 같지 않다. 순조로운 회복세를 보여 왔다는 평가를 받은 미국 경제에 지난 주말 고용 불안이라는 복병까지 등장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은 불안감을 안은 채 한 주를 시작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