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선덕여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향일암을 찾아간다. 여명이 간밤의 칠흑을 벗겨내는 여수 돌산도 7번 군도의 끝,향일암 들목인 임포마을에 닿는다. 돌산 갓김치와 미역 등 온갖 건어물이 수북이 쌓여 있는 상가 사이로 난 길을 거슬러 오른다. 막 개화를 시작한 돈나무의 흰 꽃이 눈부시다. 흰색은 신령스러운 색이다. 불교에서는 흰색 코끼리를 신성한 짐승으로 여긴다.

일주문을 지나자 거대한 두 개의 바위 사이로 뚫린 좁은 석문이 나온다. 이른바 해탈문이다. 허리를 구부려야만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다. 극락정토로 들어가려는 사람에게 겸양과 겸손을 가르치려는 뜻인가. 몸을 더 낮추고 마음을 한껏 가다듬고나서 문을 통과한다.

◆인간이라는 금거북의 실체

작년 12월 화재로 소실돼버린 옛 대웅전 자리엔 원통보전이란 현판을 단 조촐한 가건물이 서 있다. 원통보전 마당 가 한 쪽,해수관음보살상 옆에 서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본다. 어쩌면 저 붉은 해는 하늘나라 정원에서 피는 동백꽃인지도 모른다. 여남은 명이 일출을 지켜보고 있다. 저마다의 얼굴엔 한 번쯤 새롭게 삶을 시작하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다. 그러나 일상이란 수많은 습관을 감춘 견고한 갑각류 껍질인 것을….

향일암을 뒤로 한 채 금오산(金鰲山)을 오른다. 금오산은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산길이 꽤나 가파르다. 금오산은 금거북산이란 뜻이다. 산이 마치 한 마리 금거북이 부처님 경전인 불경바위를 등에 얹고 용궁으로 기어가는 형국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정상((323m)에 올라 일망무제로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본다. 바다가 저토록 광활하니 이 금거북은 언제쯤에나 용궁에 닿을 것인가. 하나의 자각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멀고 아득한 영원이라는 시간과 씨름해야 하는 금거북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때로는 생생한 현실보다 날카로운 비유가 더 불덩이처럼 뜨거울 때가 있다.

돌산대교 위를 걷는다. 여기서부터 오동도까지 걸어갈 작정이다. 왁자지껄한 수산시장에 들러 사람 사는 맛을 제대로 느끼고 나서 조선시대에 지은 객사인 진남관으로 가 역사가 주는 감회에 젖어 보리라.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리모델링 중이라는 여수 수산시장은 한가하기 짝이 없다. 만족스럽지 못한 눈요기를 위해 덤처럼 중앙동 구판장의 어시장을 찾는다. 문어 · 은복 · 갯비틀이고동 · 노랑가오리 · 개불 · 노래미 등의 갯것들이 좌판을 지키고 있다. 이 근처에는 술 마신 다음 날 속풀이에 그만인 노래미국이나 개불 전골을 잘 하는 집이 많다고 한다.

◆종고산 자락에서 승전고 울리던 그 때

국보 제 304호 진남관은 종고산 자락에 있다. 싸움에서 이긴 이순신 장군이 승전고를 울리자 온산이 덩달아 종소리와 북소리를 울렸다 하여 종고산이라 이름 지었다는 야트막한 산이다. 그러나 이 산은 여수 땅에서 모은 재물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속설을 낳기도 했다. 산이 소리가 쉬 끊기는 종을 닮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진남관으로 오르는 돌계단 중간에는 마치 수문장처럼 키 큰 후박나무 두 그루가 지키고 섰다. 전라좌수영의 객사인 진남관은 임진왜란 이듬해에 처음 지어졌지만 정유재란 때 불타버렸으며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숙종 44년(1718) 95대 수사 이제면이 중창한 것이다. '진남'이란 남쪽의 왜구를 진압하여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뜻이다.

진남관은 길이 75m,높이 14m,정면 15칸(54.5m),측면 5칸(14.0m),연건평 240평에 달하는 건축물이다. 둘레가 2.4m에 달하는 커다란 민흘림기둥이 68개나 서 있는 평면은 벽체가 없는데다 창호마저 달지 않은 채 통 칸으로 뚫려 있어 이 건물을 더욱 웅장하게 보이게 한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역대 임금의 궐패(闕牌)를 봉안하고 초하루와 보름날에 군수가 망궐례를 올렸다고 한다. 솟을대문 옆에는 문인의 모습을 한 석인상(石人像) 1구가 외로이 역사의 흥망성쇠를 지키고 섰다.

◆영취산 흥국사의 무지개 돌다리

피안의 세계가 그리워서 영취산 흥국사를 찾아간다. 들머리에서 조선 인조 때 세웠다는 무지개형 돌다리를 만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고 긴 돌다리다. 흥국사 들목에 놓인 홍교는 세속과 불국토의 갈림길을 상징한다. 흥국사의 불이문 노릇을 맡은 셈이다.

천왕문을 지나 봉황루를 에돌고 법왕문을 지나 절 마당에 이른다. 흥국사는 고려 명종 25년(1195)에 보조국사 지눌이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창건 당시 건물들은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버렸고 현존하는 전각들은 인조 때 다시 세운 것들이다. '절이 잘 되면 나라가 흥하고,나라가 흥하면 절도 흥한다'라는 사찰명 그대로 왜란과 호란 등 전쟁 속에서 승병을 모아 외적과 대항했던 것이 흥국사의 역사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전각들은 대웅전을 주축으로 배치돼 있다. 법화경은 대웅전을 '중생을 고통 없는 피안의 세계로 데려가는 한 척의 반야용선'에 비유하고 있다. 대웅전을 떠받친 축대는 당연히 바다를 상징할 터이다. 축대에 용 · 거북 · 게 등을 새겨 놓은 것은 그 때문이다.

대웅전 오른쪽엔 무사전(無私殿)이란 특이한 이름을 가진 전각이 있다. 흔히 명부전 또는 지장전이라고 부르는 전각이다. 사람이 죽은 뒤에 명부에 가면 자신이 지은 업에 따라 공평무사하게 심판받는 곳이라는 뜻이다. 오늘날 우리의 삶이 신실하지 못하고 신앙심 또한 돈독하지 않은 까닭은 옛 신라 사람이나 백제 사람들보다 죽음이 멀어져서 저승을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자신의 생을 공평무사하게 심판받는 명부가 먼 까닭에 사람들은 오만에 빠져 죄와 업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영취산이 설하는 소리없는 법문을 들으면서 피안으로 가는 반야용선에서 그만 내려선다.

●찾아가는 길

1번 경부고속국도 또는 35번 중부고속국도~비룡JC~산내JC~35번 통영대전고속국도~진주JC~10번 남해고속국도~순천IC~17번 국도~여수.항공편으로 여수공항에 내려 렌터카를 이용해도 된다.


안병기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