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전 10시,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의 사임 발표 직후 도쿄외환시장에서 엔화가치는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미 달러화에 대한 엔화가치는 91.37엔으로 전날 뉴욕외환시장의 90.94엔에서 0.43엔 떨어졌다. 유로화에 대해서도 전날 111.22엔에서 111.78엔으로 가치가 하락했다. 주가도 떨어졌다. 이날 닛케이평균주가는 전날보다 108엔 떨어진 9603.24엔으로 마감했다. 시장 관계자는 "정치불안이 일본 경제에 대한 신뢰를 깎아내린 결과"라고 분석했다.

하토야마 총리의 전격 사퇴로 일본 경제는 또 하나의 시름을 안게 됐다. 내수 침체로 인한 디플레이션과 도요타 리콜사태 이후의 자신감 상실에 '정치 혼란'이라는 악재가 더해졌다. 최근 수출 증가로 그나마 숨통을 트려던 경제가 정치 리더십 변화라는 불확실성 때문에 다시 움츠러들지 않을까 일본 경제계는 우려하고 있다.

◆미군기지 정치자금이 발목

하토야마 총리가 취임 8개월여 만에 사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두 가지다. 오키나와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문제와 정치자금 의혹이 결정타였다. 일본은 2006년 미국과 오키나와 후텐마기지를 같은 오키나와 내 나고시 캠프슈워브 연안지역으로 이전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하토야마 총리는 작년 총선 때 이를 뒤집고 후텐마기지를 '최소한 오키나와현 밖으로 이전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통해 미국과 동등한 동맹관계를 구축하겠다는 게 하토야마의 계산이었다. 하지만 어떤 지방자치단체도 미군 기지를 받겠다는 곳이 없었고,미국과는 신뢰관계에 금이 갔다.

정치자금 문제도 큰 부담이었다. 모친에게서 10억엔(약 130억원)의 정치자금을 받고도 이를 허위 기재한 게 들통나면서 여론의 반발을 샀다. 후텐마기지에다 정치자금 문제로 흔들린 하토야마 내각은 출범 때 70%를 넘던 지지율이 10%대까지 떨어졌다. 이대로는 다음 달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의 참패가 불가피했다.

◆리더십 혼란에 경제계 시름

일본 민주당은 자민당의 반세기 장기 집권을 작년 8월 중의원 선거에서 뒤집어 정권교체를 했다. 새로운 정치에 일본 국민들의 기대도 컸다. 그러나 하토야마 정권이 임기 4년은커녕 1년도 안 돼 퇴진하면서 실망감도 크다. 일각에선 총리들이 1년도 못 채우고 연속 교체되던 자민당 정권 말기와 다를 게 뭐냐는 비판도 나온다.

경제계의 우려가 특히 심각하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장기 내수침체와 도요타 리콜 사태 등으로 국민들의 일본 경제에 대한 자신감이 약해진 상황"이라며 "정치가 성장정책을 제시하고 경제를 주도해도 모자랄 판에 안타깝다"고 말했다. 게이단렌 관계자는 "국가의 비전을 보여줘야 할 정치가 길을 잃고 헤매는 꼴"이라고 진단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