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강원도 동해시 동해항.구자열 LS전선 회장은 어른 팔뚝 굵기만한 해저케이블이 처음으로 배에 실리는 모습을 한참동안 말없이 지켜봤다. "정말 설렙니다. "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유럽 업체들만 만들 수 있었던 게 해저케이블이었는데,그걸 우리 힘으로 만들어냈으니 이젠 해외 시장으로 나갈 차례입니다. "

해저케이블은 육지와 섬 사이 바닷 속에 매설해 전기와 물,가스까지 공급할 수 있도록 만든 첨단 전선이다. 통신선 역할까지 하기 때문에 전선 업계의 새 먹을 거리로 꼽힌다. 지금까지는 프랑스 넥상스,이탈리아 프리즈미안 등 유럽 전선회사들이 시장을 독식해 왔다.

2003년 LG가(家)에서 분가해 나올 때만 해도 LS전선이 갖고 있는 기술은 보잘것 없었다. 제품개발을 위해 팀을 구성한 것은 불과 3년 전.바닷속에 깔아야 하는 특징 때문에 개발팀은 바다 위에서 먹고 자기를 수없이 반복해야 했다. 진도와 제주 사이를 잇는 330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에 뛰어들 때엔 주위의 우려도 많았다.

LS전선은 통신선과 전력공급선 3가닥을 하나로 꼬아 한번에 매설할 수 있는 '한국형'기술로 승부를 걸었다. 생산 효율을 높이기 위해 생산기지 선택에도 신중을 기했다. 항구가 가까워야 물류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구 회장이 직접 발품을 팔며 부지를 물색했다. 항구가 300m 가까이에 있는 동해 바닷가의 송정산업단지는 최적지였다.

그렇게 세계 경기 침체라는 최대 악재를 딛고 해저케이블 개발과 공장 설립,첫 생산까지 2년여가 걸렸다. 구 회장은 이를 두고 '집념의 결과'라고 표현했다. 그의 꿈이 향하고 있는 곳은 정상의 자리다. 반도체와 LCD에 이어 해저케이블을 세계 1위에 올려놓겠다는 도전이다.

유럽발(發) 금융위기가 우리 경제에 다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원자재 값이 뛰어서,사람이 없어서 '기업하기 힘들다'는 장탄식도 들린다. 난관을 뚫고 신(新)시장에 첫 발을 내디딘 구 회장의 도전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기업인들 사이에서 '한 번 해보자'는 집념의 메아리가 더 크게 일었으면 한다.

김현예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