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 이른 유럽식 복지 모델] '票와 바꾼 복지' 재정적자 직격탄…'요람에서 무덤까지'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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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 워치
남유럽 휩쓴 포퓰리즘 그리스 등 국가부도 불러
남유럽 휩쓴 포퓰리즘 그리스 등 국가부도 불러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표방되던 유럽의 사회복지 모델이 조만간 관 속으로 들어갈 처지에 놓였다. 유럽 전역으로 재정적자 위기가 확산되면서 급여 감축과 연금수령 개시연령 상향,노동시간 연장,건강보험 및 연금 축소 등 복지 혜택을 줄이는 국가들이 잇따르고 있다. 한때 '이상향'으로까지 불릴 정도로 여유로운 사회를 지탱했던 복지 모델이 한계점에 봉착한 채 퇴출 위기에 처한 것이다.
◆장례식 준비 중인 유럽 복지 모델
유럽인들은 그동안 긴 휴가(바캉스)와 조기 은퇴,넉넉한 연금,높은 실업수당,잘 갖춰진 의료보험 시스템이라는 복지제도의 과실(果實)을 향유해왔다. 유럽식 복지 모델은 자유와 평등을 확대한다는 유럽적 이상을 실현하는 동시에 현실적으로는 각종 사회 · 계급 갈등을 완화하는 묘책으로 20세기 초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복지국가 모델은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서 유럽이 군사비 부담을 덜 수 있었던 데다 경제 호황이 지속되면서 유럽 대륙에 확실하게 뿌리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유럽식 복지 모델은 생산력이 뒷받침되지 못한 채 무임승차자를 양산하면서 한계를 노출했다. 여기에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침체와 인구 고령화까지 겹치면서 유럽 경제는 더 이상 '비정상적 복지'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실제 유럽 각국은 앞다퉈 복지 모델을 수술대 위에 올려놓는 처지다. 연금 개혁이 대표적이다. 프랑스는 현재 60세인 연금수령 개시연령을 지속적으로 늦추는 연금 개혁안을 추진 중이다. 독일과 스웨덴,이탈리아는 이미 연금 지급 규모를 축소했다. 아일랜드는 최근 사회복지 예산 7억6000만유로를 삭감하는 조치를 취했다. 스페인은 2500유로의 출산수당 제도를 폐지했다.
복지 퇴조 물결은 '늙은 대륙' 유럽의 인구학적 구조와도 무관치 않다. 유럽의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2050년까지 두 배 가까이 늘어날 전망이다. 1950년대 경제활동 인구 7명이 노인 1명을 부양했지만 2050년에는 1.3명이 1명을 부양할 수밖에 없게 돼 복지제도를 유지하기엔 젊은층의 부담이 너무 커져 버렸다.
이에 따라 복지제도를 둘러싼 세대 간 갈등도 표면화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유럽 각지의 젊은이들이 '50세쯤 은퇴해서 희희낙락하는 부모 세대를 부양하기 위해 젊어서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할 판'이라며 분노하고 있다"고 전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노동생산성도 하락,복지재원 마련을 위한 경제성장 기반마저 흔들리고 있다.
◆포퓰리즘이 문제의 근원
최근 재정위기로 존립이 가장 위태로운 것은 남유럽 복지 모델이다. 유럽 복지국가는 보통 △앵글로색슨형(영국 아일랜드) △대륙형(독일 오스트리아 벨기에) △북유럽형(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지중해형(그리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 등 4개 유형으로 나뉜다. 이 중 서유럽 중심의 대륙형은 남유럽 국가들보다 경제 기반이 튼실한 데다 처음부터 '합리적 복지'를 지향했기에 타격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반면 남유럽형 복지 모델은 포퓰리즘에 편승,분수에 넘치는 복지 혜택을 과도하게 도입한 탓에 재정 부담을 키워왔다. 유럽연합(EU)의 공공 사회비용 총지출은 1980년 국내총생산(GDP)의 16%에서 2005년 21%로 급증했으며,이는 대부분 남유럽 국가들이 주도했다.
실제 유럽 재정적자 위기의 '진앙지'그리스는 지난해 사회보장비용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8.0%에 달했다.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개 회원국 평균(15.2%)을 웃도는 것은 물론 대표 복지국가로 알려진 북구의 노르웨이(16.2%)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그리스 정부는 2001년 유로존(유로화 사용 16개국)에 가입한 이래 복지 지출을 급격히 늘렸다. 공무원 수를 지난 5년간 7만5000명 늘렸고,국가연금도 13종류나 운용할 정도로 연금제도를 방만하게 운영했다.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연령도 61세로 빠른 편인 데다 각종 조기 은퇴 옵션도 허다하다.
과도한 복지가 뿌리내릴 수 있던 것은 그리스 내 좌우 이념 대립이 심화되면서 표를 얻기 위해 인기 위주의 선심성 정책이 경쟁적으로 쏟아졌기 때문이다. 복지와 표를 바꾼 것이다. 이탈리아 역시 표를 얻기 위해 선심성 복지정책을 남발해 국가경쟁력이 약화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남유럽국들과 공통점이 많은 프랑스도 GDP 대비 공공 사회부문 지출 비중이 무려 31%에 달하면서 복지 부담에 휘청이고 있다. 프랑스에서 50세 이상 가운데 일하는 사람 비율은 스웨덴과 스위스(70%대)의 절반에 불과할 정도로 '일 안 하고 노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과거 프랑수아 미테랑 사회당 정부가 65세 연금수령개시연령을 60세로 낮춘 이후 국민연금 적자도 큰 골칫덩이가 됐다. 프랑스 국민연금은 올해 110억유로 적자가 예상되고 2050년에는 그 규모가 1030억유로로 늘어날 전망이다. 프랑스 정부가 연금수령 개시연령을 현행 60세에서 67세로 늦추는 연금법 개혁안을 추진 중이지만 노동계와 야당은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유럽인들은 그동안 긴 휴가(바캉스)와 조기 은퇴,넉넉한 연금,높은 실업수당,잘 갖춰진 의료보험 시스템이라는 복지제도의 과실(果實)을 향유해왔다. 유럽식 복지 모델은 자유와 평등을 확대한다는 유럽적 이상을 실현하는 동시에 현실적으로는 각종 사회 · 계급 갈등을 완화하는 묘책으로 20세기 초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복지국가 모델은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서 유럽이 군사비 부담을 덜 수 있었던 데다 경제 호황이 지속되면서 유럽 대륙에 확실하게 뿌리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유럽식 복지 모델은 생산력이 뒷받침되지 못한 채 무임승차자를 양산하면서 한계를 노출했다. 여기에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침체와 인구 고령화까지 겹치면서 유럽 경제는 더 이상 '비정상적 복지'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실제 유럽 각국은 앞다퉈 복지 모델을 수술대 위에 올려놓는 처지다. 연금 개혁이 대표적이다. 프랑스는 현재 60세인 연금수령 개시연령을 지속적으로 늦추는 연금 개혁안을 추진 중이다. 독일과 스웨덴,이탈리아는 이미 연금 지급 규모를 축소했다. 아일랜드는 최근 사회복지 예산 7억6000만유로를 삭감하는 조치를 취했다. 스페인은 2500유로의 출산수당 제도를 폐지했다.
복지 퇴조 물결은 '늙은 대륙' 유럽의 인구학적 구조와도 무관치 않다. 유럽의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2050년까지 두 배 가까이 늘어날 전망이다. 1950년대 경제활동 인구 7명이 노인 1명을 부양했지만 2050년에는 1.3명이 1명을 부양할 수밖에 없게 돼 복지제도를 유지하기엔 젊은층의 부담이 너무 커져 버렸다.
이에 따라 복지제도를 둘러싼 세대 간 갈등도 표면화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유럽 각지의 젊은이들이 '50세쯤 은퇴해서 희희낙락하는 부모 세대를 부양하기 위해 젊어서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할 판'이라며 분노하고 있다"고 전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노동생산성도 하락,복지재원 마련을 위한 경제성장 기반마저 흔들리고 있다.
◆포퓰리즘이 문제의 근원
최근 재정위기로 존립이 가장 위태로운 것은 남유럽 복지 모델이다. 유럽 복지국가는 보통 △앵글로색슨형(영국 아일랜드) △대륙형(독일 오스트리아 벨기에) △북유럽형(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지중해형(그리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 등 4개 유형으로 나뉜다. 이 중 서유럽 중심의 대륙형은 남유럽 국가들보다 경제 기반이 튼실한 데다 처음부터 '합리적 복지'를 지향했기에 타격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반면 남유럽형 복지 모델은 포퓰리즘에 편승,분수에 넘치는 복지 혜택을 과도하게 도입한 탓에 재정 부담을 키워왔다. 유럽연합(EU)의 공공 사회비용 총지출은 1980년 국내총생산(GDP)의 16%에서 2005년 21%로 급증했으며,이는 대부분 남유럽 국가들이 주도했다.
실제 유럽 재정적자 위기의 '진앙지'그리스는 지난해 사회보장비용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8.0%에 달했다.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개 회원국 평균(15.2%)을 웃도는 것은 물론 대표 복지국가로 알려진 북구의 노르웨이(16.2%)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그리스 정부는 2001년 유로존(유로화 사용 16개국)에 가입한 이래 복지 지출을 급격히 늘렸다. 공무원 수를 지난 5년간 7만5000명 늘렸고,국가연금도 13종류나 운용할 정도로 연금제도를 방만하게 운영했다.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연령도 61세로 빠른 편인 데다 각종 조기 은퇴 옵션도 허다하다.
과도한 복지가 뿌리내릴 수 있던 것은 그리스 내 좌우 이념 대립이 심화되면서 표를 얻기 위해 인기 위주의 선심성 정책이 경쟁적으로 쏟아졌기 때문이다. 복지와 표를 바꾼 것이다. 이탈리아 역시 표를 얻기 위해 선심성 복지정책을 남발해 국가경쟁력이 약화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남유럽국들과 공통점이 많은 프랑스도 GDP 대비 공공 사회부문 지출 비중이 무려 31%에 달하면서 복지 부담에 휘청이고 있다. 프랑스에서 50세 이상 가운데 일하는 사람 비율은 스웨덴과 스위스(70%대)의 절반에 불과할 정도로 '일 안 하고 노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과거 프랑수아 미테랑 사회당 정부가 65세 연금수령개시연령을 60세로 낮춘 이후 국민연금 적자도 큰 골칫덩이가 됐다. 프랑스 국민연금은 올해 110억유로 적자가 예상되고 2050년에는 그 규모가 1030억유로로 늘어날 전망이다. 프랑스 정부가 연금수령 개시연령을 현행 60세에서 67세로 늦추는 연금법 개혁안을 추진 중이지만 노동계와 야당은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