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守成)과 중용(中庸)의 정신으로 먼 길을 걸어왔다. 회사일 빼놓고는 다른 생활이 없는 듯싶을 만큼 난 젊은 날부터 삼양사 사람이었다. "

23일 타계한 김상홍 삼양그룹 명예회장은 1999년 펴낸 자서전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에서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요약했다.

창업주인 고(故) 김연수 회장의 3남으로 태어난 그는 자서전의 표현대로 1947년 25세의 젊은 나이에 삼양사에 입사,1996년 명예회장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기까지 50년 가까운 세월을 회사에 투신했다.

명예회장직을 맡은 후에도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본사로 출근하는 등 회사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고 지인들은 전한다.

고인은 평소 '선친이 일으켜 놓은 일을 이어받은 수성의 경영인'이라고 스스로를 낮췄지만,식품과 석유화학 사업을 통해 삼양그룹의 기반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가 화두였던 1955년 삼양설탕(현 큐원설탕)을 설립,제당업에 진출한 뒤 꾸준히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1969년에는 전주에 폴리에스터 공장을 건립하면서 화섬사업을 제당사업과 함께 회사 성장의 양대 축으로 삼았다. 1980년대에는 전분당 기업인 삼양제넥스,고순도 테레프탈산(TPA) 업체인 삼남석유화학,폴리카보네이트(PC)제조 업체인 삼양화성을 잇따라 세우며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현재 삼양그룹은 14개의 식품 · 화학 계열사를 두고 있다.

김 명예회장이 늘상 강조하는 인생 및 경영철학은 '중용지도'다. "중용에서 中이 뜻하는 것은 '중간치'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알맞은 보편 타당한 도리'요,庸은 '한결같음'"이라며 "중용의 지혜야말로 건전한 기업 문화를 밑받침해줄 정신의 뿌리"라는 게 그의 '중용론'이다.

고 김연수 회장은 장남(고 김상준 삼양염업사 명예회장)과 4남(고 김상돈 삼양염업사 고문)에게는 전북 고창군 해리염전을 포함한 삼양염업사를,3남인 김 명예회장과 5남(김상하 삼양그룹 회장)에게는 삼양사 경영을 맡겼다.

그는 생전에 한 일간지에 기고한 '재계 회고'라는 칼럼에서 "상홍은 성품이 온유하고 진실한 편이어서 회사 내에서도 자기 권한을 최소한으로 좁히며 나타내지 않는 성품이었다. 그러나 어떤 중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서슴없이 결단력을 발휘하곤 했다"고 평했다.

고인은 화섬 분야의 신기술 개발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1986년 정부로부터 금탑산업훈장을,1989년에는 한국능률협회로부터 '한국의 경영자상'을 수상했다.

1939년 선친이 국내 최초로 설립한 민간 장학재단인 양영재단과 1968년 형제들과 함께 설립한 수당재단을 통해 현재까지 2만1000여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는 등 인재 양성에도 힘써 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차부영씨와 장남 김윤 삼양사 회장,차남 김량 삼양사 · 삼양제넥스 사장,장녀 유주씨,차녀 영주씨 등 2남2녀가 있다.

서울 아산병원에 마련된 빈소에는 구두회 예스코 명예회장,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박용현 두산그룹 회장,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이병무 아세아그룹 회장,강신호 동아제약 회장,임창욱 대상홀딩스 회장,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 등 재계 인사들이 조문했다.

이정호/조재희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