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몰리는 랩…하락장선 힘 못쓰네
코스피지수가 1700선을 회복한 지난달 투자자들이 주식형펀드에서 증권사 랩어카운트(자산관리계좌)로 대거 갈아탔지만 최근 하락장에서 수익률 저하로 부심하고 있다. 투자자문사와 연계해 인기를 끌고 있는 자문형 랩 상품이 해외발 악재 속에 주식형펀드보다 더 큰 손실을 낼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랩 상품은 몇몇 종목을 집중 공략하는 특성 탓에 강세장에선 시장수익률을 뛰어넘지만 하락장에선 오히려 손실폭이 커질 수 있다. 이로 인해 금융감독원은 증권사 랩 상품에 대한 운용 실태 조사에 착수했다. 투자자들이 펀드와 랩 상품의 차이를 제대로 모르고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채 랩에 가입할 우려가 높다는 판단에서다.

◆10개 안팎 종목만 집중 투자

코스피지수가 전주 나흘 연속 급락,지난 주말(20일) 1600.18까지 주저앉으면서 고수익을 노리고 펀드에서 랩 상품으로 갈아탔던 투자자들이 지난주 큰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달까지 이어진 강세장에선 정보기술(IT)주 자동차주나 부품주를 주로 편입해 펀드보다 좋은 성과를 냈지만 이달 하락장에선 거꾸로 낙폭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50~70개 종목을 편입하는 주식형펀드와 달리 10개 안팎의 종목에 집중 투자해 고수익을 노리는 공격적인 투자 방식이 하락장에선 먹히지 않는 것이다.

지난달 펀드에서 랩 상품으로 갈아탄 투자자들은 주요 포트폴리오 종목의 급락으로 손실을 보고 있다. H증권 자문형 랩 상품에 가입한 투자자 A씨는 이달 들어 손실이 15%에 달해 코스피지수 하락률(8.11%)의 두 배에 가깝다. 낙폭이 컸던 하이닉스가 랩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나 됐기 때문이다.

같은 상품에 지난 2월 가입한 투자자 B씨의 경우에도 누적 수익률이 4월 말 22%에서 현재 10%로 급락했다. B씨는 "주식형펀드와 달리 자문형 랩은 하락장에서 주식 투자 비중을 제로(0)까지 낮출 수 있어 수익률 방어에 유리하다고 해 가입했는데 손실이 커져 곤혹스럽다"고 토로했다.

◆주도주 급락에 랩 상품 수익 저하

올해 초부터 주요 자문사들이 선호해 온 중소형 IT부품주들은 최근 급락장에서 맥을 못 추고 있다. 코스닥의 파트론이 최근 나흘 동안 14.46% 급락했고 KH바텍 우주일렉트로닉스도 10% 안팎 떨어졌다. 같은 기간 코스닥지수 하락률(8.36%)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대형주 중에선 LG전자 하이닉스가 이달 들어 각각 16~17% 하락했다. 주요 자문사들의 포트폴리오에 빠지지 않았던 LG화학은 잘 버티다가 최근 나흘 새 10.32% 미끄러졌다. 자동차 관련주들이 아직 버티고 있는 점이 그나마 위안거리다.

대형 증권사의 랩 상품 운용을 돕는 한 투자자문사 관계자는 "1740대였던 코스피지수가 갑자기 1600까지 떨어지면서 올해 누적 수익률이 20%대에서 한 자릿수로 줄거나 고객에 따라선 마이너스가 난 경우도 있다"며 "시장 상황이 급변하고 있지만 포트폴리오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종목이나 투자 비중을 미세조정해 대응하고 있다"고 전했다.

◆수익률 매일 들여다봐 더 불안

2001년 국내에 처음 소개된 랩 상품은 올해 '제2 전성기'를 구가하며 시중자금을 대거 빨아들였다. 지난달에는 주식형펀드에서 4조원이 빠져나간 반면 12개 주요 증권사의 랩 잔액은 27조원으로 한 달 새 6조원 가까이 불어났다. 증권사들은 자문형 랩 상품을 경쟁적으로 출시했고 특정 투자자문사에 돈을 맡기려는 거액 자산가도 속출했다.

하지만 남유럽 재정위기로 증시 상황이 돌변하자 투자자들은 한숨을 짓고 있다. 펀드와 달리 개인 계좌 단위로 운용되는 랩어카운트는 홈트레이딩시스템(HTS) 등을 통해 수익률,평가금액,잔액 등을 수시로 조회할 수 있는 점도 투자자들의 불안심리를 고조시키는 요인이란 지적이다.

금감원은 이런 점을 의식,랩 운용 관련 자료를 주요 증권사에 요청해 실태 조사에 나섰다. 금감원 관계자는 "증권사들이 고객 예탁자산을 투자성향에 맞춰 '맞춤형'으로 운용해주고 있다며 마케팅하는데,과연 제대로 맞춤 형식 자산관리를 하고 있는지 따져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감원은 특히 증권사가 고객 자산을 받아 투자자문사에 자문을 맡기는 방식의 자문형 랩 상품에 대해 집중 조사를 벌인다는 계획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투자자들이 랩 상품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고 포트폴리오 다양화 차원에서 가입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 전문가는 "랩 상품을 주식형펀드의 대체재로 잘못 이해하는 투자자들이 적지 않다"며 "주식형펀드는 한 종목에 10% 이상 투자하지 못하고 시장 상황에 관계없이 최소 60% 이상을 주식에 투자하는 장기 · 분산투자를 기본으로 하지만 랩 상품은 이런 원칙이 없는 고수익 고위험 상품"이라고 지적했다.

서보미/조진형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