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문화 기행] (2) 베네치아가 눈물 흘릴때 나폴레옹은 최대 전리품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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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베네치아‥산 조르조 마조레의 잃어버린 명화
정석범 미술사학 박사
정석범 미술사학 박사
베네치아 공화국 최후의 날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에 나폴레옹의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약탈자들이었다. 놀랍게도 그들은 예배당 내부를 장식하고 있던 틴토레토와 바사노의 성화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목적지는 수도사들의 식당이었다. 그들이 노린 것은 바로 파올로 베로네세의 명화 '가나의 혼인잔치'(사진)였다.
200년 넘게 식당 벽을 장식하고 있던 가로 10여m에 폭 6.6m인 이 작품은 화가가 작품을 완성한 이래 수많은 제왕과 귀족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고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아류작을 탄생시켰다. 이 베네치아 화파의 걸작은 마침 창문을 통해 떨어지는 빛을 받으며 자신의 마지막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잠시 후 그림은 둔탁한 소리와 함께 식당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운반상의 편의를 위해 그림은 무자비하게 반으로 절단되었다. 멀찍이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수도사들의 눈에 통한의 눈물이 괴었다. 베로네세의 명작은 이렇게 베네치아의 멸망과 운명을 함께 했다.
무엇이 이 그림을 그토록 유명하게 만든 것일까. 나폴레옹 군대의 최고 전리품으로 지목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화가의 독특한 작품 소화 방식에 있었다.
이 작품은 예수가 마리아와 함께 가나의 친지 혼인잔치에 참석했다가 술이 동나자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했다는 기적을 주제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제목과는 다르게 이 그림은 기적만을 그린 것이 아니었다. 화가는 신약의 신비주의적 에피소드에 현세의 즐거움을 결합했다. 가운데의 예수 일행 테이블 좌우로 화가는 자신의 생존 당시 의상을 걸친 인물들을 배치했고 특히 전면 중앙 아래에는 실내악을 연주하는 네 명의 악사들을 배치했다. 놀랍게도 이들은 베네치아 화파를 대표하는 네 명의 화가들이다. 티치아노는 더블 베이스,틴토레토는 비올라,바사노는 플루트,베로네세 자신은 첼로를 연주하고 있다.
악사가 화가라니,놀랍지 않은가. 그러나 베네치아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음악이 없는 베네치아인의 삶이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조르조 바사리의 《르네상스 화가 열전》에 따르면 조르조네는 플루트를 너무 잘 불어 귀족들의 초대로 몸살을 앓을 정도였고,틴토레토는 음악 마니아였으며,티치아노는 자신의 작품을 휴대용 오르간과 서슴없이 맞바꿨다고 한다. 그들은 회화뿐만 아니라 음악으로도 현세를 찬양했던 것이다.
베로네세는 이 작품에서 마치 무대 연출가가 된 듯 130명에 달하는 등장인물들을 궁정풍의 저택에 치밀하게 배치했다. 주역과 단역 배우들이 저마다 활기찬 몸짓을 하고 있는 이 공간은 성서의 신비로운 공간이 아니라 현세의 행복을 찬양하는 연극적 공간에 다름 아니다. 예수의 기적이라는 주제는 현세의 화려한 커튼에 가려 머쓱해진 느낌이다.
그림이 명성을 얻은 이유는 이 뿐만이 아니었다. 이 작품은 고대건축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여 성당 공간에 민간건축을 접목하려한 팔라디오의 건축 이념을 회화에 투사한 것이기 때문이다. 팔라디오는 건물의 채광 효과를 중시하고 개별 건축 요소들 사이의 어울림을 중시했는데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은 그의 이러한 생각이 반영된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베로네세의 그림도 실은 그러한 팔라디오의 의도를 살리기 위해 건물의 일부로 고안된 것이다.
물론 이 회화의 거장은 팔라디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볕이 가장 잘 드는 위치에 색채감각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화려한 자연안료로 그려졌다. 또 그림 속의 공간을 연극 무대처럼 구성함으로써 식당 내부의 공간이 그림 속의 공간으로 확장되게끔 했다.
현세성이 물씬 풍기는 건물과 작품의 개방성은 베네치아의 종교적 관용과 함께 세속적 권력의 종교에 대한 우위를 말해주는 것이다. 당시 베네치아 종교재판소의 성직자 판사는 정부에서 파견된 판사 3인의 동의 없이는 어떠한 결정도 내릴 수 없었다고 한다. 같은 시대 로마나 피렌체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후미진 곳에 앉힐 수 있다는 화가의 발상,이런 그림을 성당 안에 걸어도 된다는 성직자들의 유연한 사고 속에서 베네치아의 문화적 개방성을 엿볼 수 있다. 신과 함께하는 식탁이라.왕과 귀족들이 이 그림을 탐낼 만하지 않은가.
1797년 나폴레옹 군에 의해 프랑스로 옮겨졌던 이 작품은 현지에서 봉합돼 지금은 루브르 박물관의 인공조명 아래 창백한 얼굴로 멍하니 과거의 영화를 회상하고 있다.
그러나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에서 이 작품을 볼 수 없다고 실망하기는 이르다. 이 성당의 종탑은 베로네세가 그림으로 예찬한 현세의 낙원 베네치아의 아름다운 풍경을 우리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코발트블루의 수상무대 위로 산마르코 대성당,두칼레 궁전,산타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은 저마다 단아한 자태를 뽐내며 매혹적인 벨칸토로 현세의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있다. 들리지 않는가. 그 위로 흐르는 베로네세의 첼로와 틴토레토의 비올라 선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