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민자사업 활성화' 시장성이 관건
눈앞의 이득을 취하려다 더 큰 손해를 보는 잘못을 개인이나 국가나 범하곤 한다. 한 예로 1960~70년대에 펼쳤던 전국 쥐잡기 운동을 들 수 있다. 쥐약을 놓아 곳간의 쌀을 훔치는 쥐를 잡은 것은 당장 드러난 성과였다. 그런데 쥐약을 먹고 돌아다니는 쥐를 잡아먹은 부엉이나 올빼미의 죽음이라는 더 큰 대가를 지불하게 됐다. 먹이사슬의 최종 포식자인 맹금류의 죽음은 결국 쥐의 숫자만 더 늘려놓고 말았다. 자연 생태계에 대한 무지가 빚은 해프닝이었다.

최근 국내 민간투자사업이 총체적 위기에 처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2월과 8월 민간투자사업 활성화를 위해 30여 건의 대책을 발표했다. 민자사업의 유동성 지원과 민자사업 구조 및 자금조달 개선을 통한 투자여건 조성에 역점을 둔다는 취지였다. 그중 가장 특징적인 제도개선은 여론의 비난을 받던 최소운영수입보장의 폐지였다. 언뜻 보면 최소운영수입보장에 따른 우발채무 부담을 털어버리고 여론을 잠재우는 '묘수'인듯 싶었다. 초창기 최소운영수입을 보장한 사업들의 평균 수익률은 9~10%였으나 현재 공사중이거나 사업 시행자가 정해진 사업들의 경우 5% 내외로 낮아졌다.

문제는 이로 인해 민자사업이 '고위험 저수익' 구조로 전환됐다는 점이다. 그 결과 민자시장은 위축되고 필요한 사회간접자본(SOC)의 적기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30~50년 장기투자에 5%의 수익률,운영기간중 위험이 모두 민간사업자에게 귀속된 상황에서 누가 투자에 나서겠는가. 실제 금융기관 등 재무적 투자자의 투자위험이 증가하면서,7~8년 전 제안된 수도권 도로사업의 경우 금융기관의 투자기피로 사업이 표류하는 등 침몰위기에 몰리고 있다.

물론 민자시장의 침체상황은 민간자본을 사용해야 할 정부 입장에서도 곤혹스럽긴 마찬가지다. 기획재정부의 사회간접자본 투자계획을 보면 민간자본 의존도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교육과 국방,복지 부문의 예산 증가가 커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에는 민자를 활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꺼번에 민자사업의 발전과 국민부담 완화라는 두 목표를 충족시키기는 무리다. 하지만 민자시장을 '시장'으로 인정한다면,기본적으로 시장이 존재하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투자여건은 확보돼야 한다. 투자자가 없는 민자시장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의 투자여건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공적 연기금 등의 투자는 짜낼 수 있을지언정,시장에서 참여자를 구하는 일은 연목구어일 것이다. 좀 더 투자자의 시각에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우선 민자사업의 시장성이 확보돼야 한다. 최소운영수입보장 폐지 후 제시한 정부 대책들은 수익성이 크게 떨어지고 정부의 투자위험분담 범위도 작아 실질적인 지원이 되지 못하고 있다. 국민,민간사업자,정부,금융기관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의 수익성이 전제돼야 한다.

그리고 사업의 안정성과 투명성을 보장해야 한다. 장기투자사업에 있어서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은 생명이다. 실시협약을 맺은 뒤 운영중인 사업까지 최소운영수입보장률을 축소한다는 방침은 시장에 미치는 혼란이 매우 크므로 지양돼야 한다. 또한 인위적인 통행료 인하보다는 민자도로의 통행료 부가세를 면제하는 방안이 더 바람직하다.

마지막으로 정부와 민간사업자 간 신의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서로가 처한 어려운 입장을 이해하고, 초심을 갖고 각자의 책무를 수행함으로써 공생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비난 여론을 겸허히 수용하되,민자사업의 도입 취지를 살린 제대로 된 사업을 추진하는 데 협력할 때다. 아울러 현재 표류 중인 SOC 민자사업에 대한 투자여건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백성준 < 한성대 교수·부동산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