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박정희 대통령에게 경제발전에 대한 전략을 보고하려고 보고서를 다 만들어 놓았는데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는 바람에 보고하지 못했죠.이제 그 보고서를 내놓을 때가 된 것 같습니다. "

조순 전 부총리(사진)는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박 대통령의 경제정책이 균형을 잃고 있다고 생각해 바로잡아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썼다"고 말했다. 그는 17일 오후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린 팔순기념 문집 '이 시대의 희망과 현실'봉정식을 앞두고 기자와 만나 당시를 회고했다.

그가 이날 공개한 8권의 문집 중 '중 · 장기 발전전략에 관한 연구'는 당시 경제과학심의위원이던 그가 박 대통령에게 보고하려던 내용을 230여페이지에 걸쳐 담고 있다.

조 전 부총리는 당시 경제의 균형이 깨졌다고 생각한 이유에 대해 "인플레이션이 대단했다"고 전했다.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물가상승률은 10%를 넘었으며 1979년에는 18%에 달했다.

그는 "당시엔 공정가격과 시장가격이 달라 대부분 이중가격이 통용됐기 때문에 물가지수 통계숫자보다 실제 물가상승률은 훨씬 높았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주기적으로 경제학 교수들과 세미나를 열었는데 이 상태로는 국가 경제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데 모두들 공감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조선과 석유화학 등 중공업 위주 경제정책이 원인이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렇다"고 답했다. "중공업 육성 정책의 규모가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컸다"고 떠올렸다. 그는 이 같은 경제학자들의 우려를 담은 보고서를 써서 박 대통령 서거 전에 전달했다.

조 전 부총리는 "우리의 제안 때문 인지는 모르겠으나 전두환 대통령 때 물가 억제에 총력을 기울였다"며 "다만 그 방법이 행정력을 동원한 직접 통제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렇게 강제로 눌러 놓은 물가 상승 압력이 88 서울올림픽 후로 다시 터지기는 했지만 그 당시 전두환 정권이 방향은 비교적 잘 잡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 전 부총리는 앞으로 우리 경제가 갖춰야 할 요건에 대해 "균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970년대 말과 똑같은 주문이다. 그는 "특히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가 심각하다"며 "중소기업이 고용의 80% 이상을 차지하는데,완전한 균형이 없다 하더라도 격차가 너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 경제가 금융위기 이후 빨리 회복되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있다고 본다"며 "지금이 사실 금리를 올려야 하는 시기"라고 지적했다. "인플레이션이 시작되고 나서 금리를 올리면 너무 늦고 미리미리 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한편 이날 오후 열린 봉정식에는 정운찬 국무총리와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김승진 한국외대 교수(문집 편찬 위원장) 등 제자와 학계 · 문화계 인사 80여명이 참석, 문집 발간을 축하했다.

후학들이 조 전 부총리를 기리기 위해 만든 8권의 문집 중 4권은 언론매체 기고글과 미출간 연구논문 모음집이다. 짬짬이 지은 '봉천혼효삼십년'이라는 2권의 한시집,붓글씨를 모은 '봉천한인한묵집'1권도 문집에 포함됐다.

박준동/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