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성공한 한인 기업이 국내 회사를 인수해 다시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 주인공은 중국 상하이에서 굴착기 부품을 만드는 제성유압유한공사.이 회사 이창호 사장(48 · 사진)은 상하이 한인사회에서 차이나드림을 일군 몇 안 되는 기업인으로 손꼽힌다. 그가 2004년 창업한 제성유압은 7년여 만에 매출 1000억원에 육박하는 중견기업으로 초고속 성장을 했다. 특히 이 회사는 거래 기업이 모두 중국 회사들이어서 국내 기업들의 중국 시장 공략 모범 사례로 거론될 만하다.

지난해 이 회사의 실적은 매출 580억원,순이익 65억원.올해는 중국 건설붐에 힘입어 1분기에만 300억원에 육박하는 매출을 기록했다. 이 사장은 "굴착기 관련 생산 제품을 점차 늘려 2015년에는 굴착기 완성품을 만드는 회사를 만들 생각"이라며 "이후 중국 선전 증시에 상장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최근 인천 남동공단에 굴착기 부품 원재료를 공급하는 제성코리아를 세우고,굴착기 부품회사인 새롬기어도 인수했다.

이 사장이 중국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1998년 현대중공업 주재원으로 발령을 받으면서부터다. 굴착기 애프터서비스(AS) 업무를 맡았던 이 사장은 중국 대륙 곳곳을 돌아다니며 시장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당시에는 부동산으로 떼돈을 번 젊은 사업가들이 건설붐을 노리고 굴착기 회사를 만든 경우가 많았지요. 그러다 보니 돈은 많지만 기술 수준이 형편없었어요. "

이 사장은 처음부터 중국의 굴착기업체만을 대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고객사를 방문할 때마다 다른 회사들이 납품한 부품을 조립해주고 기술을 전수했다. "처음 본 사람에게 누가 물건을 사겠습니까. 그래서 물건을 팔기보다는 사업을 조언해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생산 및 품질 관리에 대해 여러 가지 얘기를 해주니 조금씩 마음을 열더군요. "

이 사장은 "고객사 중에서는 2004년부터 찾아갔는데도 2007년에야 첫 주문을 낸 회사도 있다"며 "요즘도 직원들에게 물건을 팔기보다는 고객들에게 도움을 줄 생각부터 하라고 주문한다"고 말했다. 그가 중국어를 구사할 수 있던 점도 사업에 큰 도움이 됐다. 그는 "상대방을 알고 나를 보여줘야 서로 '관시'(친분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데 언어가 안 되면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 사장이 창업할 당시 굴착기 시장에서 중국 토종기업들의 시장점유율은 2%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시장점유율이 27%까지 올라왔다. 덕분에 제성유압도 매년 눈부실 정도로 빠른 성장을 하고 있다. 제성유압은 현재 중국 굴착기 완성업체 94개사와 거래하고 있다. 중국산 굴착기에서 사용되는 조정제어바의 68%,주행모터의 65%를 이 회사가 공급하고 있다.

그는 중국에서 실패하는 한국 기업들에 대해 "사장이 시장을 알지 못하면서 한국에 앉아 현실과 동떨어진 지시를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시장의 트렌드에 빨리 적응하지 못하면 성공하기 어렵다"며 "중국도 남에게 맡겨서 성공을 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강조했다.

상하이=김태완 기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