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시장·한국 영향 긴급 점검- 그리스 재정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유로존과 국제통화기금이 1100억 유로의 구제금융 지원을 결정했지만 집행 과정에서의 불확실성과 주변 국가로의 전염 우려감이 확산되며 전세계 금융시장이 패닉 상태에 빠졌다. 그리스에 대한 디폴트(지급불능) 우려감이 커지면서 남유럽 국가 위기감으로 확산되고 이것이 전세계 금융시장에 불안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주가가 폭락하고 달러를 제외한 주요 국가들의 화폐가치가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특히 채권가격까지 하락하는 이른바 ‘트리플 약세’를 보이자 글로벌 경제에 대한 도미노 위기설이 나돌며 금융시장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그리스 위기가 전세계로 확산될 경우 제2의 리먼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금융위기의 재확산이냐, 단기 충격 이후 진정이냐를 놓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전망과 예측이 엇갈리고 있다. 일본 중앙은행은 단기 자금시장에 2조엔을 긴급 투입했으며 선진 7개국(G7) 재무장관들은 긴급 (전화)회의를 갖고 그리스 재정위기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 유로화를 사용하는 16개국(유로존) 정상들은 7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회동을 갖고 유로존 재정위기 대응책을 의논할 것으로 예정되어 있어 이번 주말을 고비로 유럽발 금융위기의 실체가 드러날 전망이다. 유럽발 금융위기가 2008년 리먼 사태때처럼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신용위기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유럽 은행들의 자본 상태는 리먼 사태 당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양호하기 때문에 급격한 자금 경색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 유럽 은행들의 자금경색 조짐 그리스발 재정위기 이후 은행간 단기 금리(LIBOR)가 상승하는 것이 금융시장에 긴장감을 주고 있다. 미국과 유로존의 상당수 은행들이 그리스와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등 재정 상황이 취약한 이른바 PIGS 국가들에 물려 있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6일(현지시간) 3개월짜리 달러 리보 금리는 13일 연속 올라 0.377%를 기록했다. 지난해 8월 이후 최고치다. 3개월짜리 유로 리보 금리도 12일째 상승하면서 0.623%를 나타냈다. 은행의 신용위험을 측정하는 척도인 오버나잇 스프레드(하루짜리 초단기대출금리와 리보금리의 격차)도 벌어지고 있다. 바클레이즈 캐피탈의 조셉 어베이트 스트래티지스트는 "리스크 회피 성향이 짙어지면서 머니마켓펀트(MMF)들이 가급적 현금을 보유하려 하고 있으며, 회사채(CP) 등의 신용위험이 있는 자산을 은행들로부터 사들이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밝혔다. ◇ 그리스 문제 전세계로 확산 우려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6일(현지시간) 그리스 위기가 유럽 금융시스템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무디스는 그리스 위기가 영국, 포르투갈, 스페인, 아일랜드, 이탈리아 등 은행시스템으로 점점 전염되고 있다고 말했다. 무디스는 앞서 지난 5일 3개월 안에 포르투갈의 신용등급 하향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무디스의 로스 아베크롬비 애널리스트는 이들 6개국이 다르지만 그리스 위기가 다른 국가들로 확산되며 각기 은행시스템의 고유한 차이점을 희석시켜 공통적으로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그리스와 근본적으로 여러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 포르투갈을 언급하면서 지난해 금융위기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던 포르투갈과 이탈리아 등 일부 국가 은행들도 그리스 재정위기가 확산되면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베크롬비 애널리스트는 전염 위험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은 시장의 평가라고 강조하고, 시장은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의 최근 그리스 지원안의 성공여부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 리먼 사태 4부 능선까지 온 듯 현재의 글로벌 금융시장 상황은 리먼사태와 비교하면 4부 능선까지 왔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미국 증시의 공포지수로 불리는 ‘변동성지수(VIX)’는 6일 32.8을 기록해 1년여만에 30을 넘었다.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가 붕괴됐을 때 최고치는 80까지 갔었다. 리먼의 신용부도 위험(CDS 프리미엄)을 비교하면 리먼 사태 공포가 극에 달했을 때의 40% 수준이다. 리먼의 CDS 프리미엄은 2008년 9월 당시 700bp를 넘었었다. 지금 유럽 은행들 중 비교적 그리스 채권 대출 비중이 높은 덱시아(Dexia) 은행 같은 경우 220bp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전염성이 강한 공포감 때문에 유럽 재정위기가 다른 국가로 확산될 것이란 경고도 나오고 있다. 세계 최대 채권투자회사 핌코의 모하메드 엘-에리언 최고경영자(CEO)는 "한 나라에서 시작된 위기가 지역 문제가 되고 유로존 전체에 충격을 주는 것을 목격해 왔다"며 이번 위기가 지난 2008년~2009년 금융위기와 비슷하게 전염될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각국이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미국도 전염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유럽 은행들은 아직 건전한 편 유럽의 은행들은 아직 건전한 편이다. 유럽 은행들이 금융위기 이후 자본건전성을 많이 높여놓았기 때문이다. 그리스에 60억 파운드의 자금을 대출해 준 BNP파리바의 경우 만일 이러한 대출금이 모두 날아간다면 전체 순자산의 10% 가량 줄어드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씨티그룹은 "그리스의 국가채무 경감 프로그램으로 BNP파리바의 순자산가치는 4%가량 감소할 수 있다"며 "이는 감내할 만한 수준(Manageable)"이라고 밝혔다. BNP파리바에 비해 그리스 대출이 훨씬 많은 소시에테제네랄 측도 상황은 그리 심각하지 않다. 그리스 대출 비중이 전체 대출자산의 0.5% 미만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리먼사태 당시 금융위기의 원인이 됐던 리먼은 자본비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던 추세였던데 비해 현재 유럽의 은행들은 대부분 금융위기 이후 자기자본 비율을 높여왔기 때문에 대비가 예전과는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최근 그리스 사태와 지난 2008년 금융위기는 신뢰의 위기에서 비롯됐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금융위기는 민간 금융부문의 신뢰에 금이 가면서 발생한 반면 이번 그리스 사태는 정부의 신뢰 문제가 위기를 잉태했다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그리스 사태가 과거 금융위기와 닮은꼴이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 그리스라는 한 국가에 국한되지 않고 인근 남유럽 국가들은 물론 전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어 놓을 정도의 강력한 '도미노 효과'도 비슷한 것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이번 위기는 과거 금융위기와 상당히 다른 측면도 있어 초기에 신속하게 전이 가능성만 차단한다면 글로벌 위기로까지는 번지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도덕적 해이와 신뢰의 문제' 전문가들은 금융위기의 전염성과 파급력 차원에서 그리스 사태와 금융위기가 매우 닮아 있다고 평가했다. 도덕적 해이가 작용한 점도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은 "금융위기와 그리스 사태는 지켜야 할 규칙을 어겼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면서 "미국 민간 은행들의 탐욕에 의한 규정 위반과 유럽의 재정준칙을 어기는 방만한 재정운영이 닮아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저금리도 위기 발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다. 금융위기가 초저금리에 따른 과도한 거품 형성에서 비롯됐다면 그리스사태 역시 저금리에서 비롯됐다는 것. 그리스 포르투갈 등이 유로존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채권 금리가 단기간내 독일 수준으로 낮아졌고 그 결과 해외 자금이 크게 유입됐다. 하지만 이들 정부는 이러한 자금을 방만하게 운용, 재정위기를 불렀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한 나라에서 발생한 문제가 다른 국가로 쉽게 전파될 수 있는 구조라는 공통점을 가졌다"며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해 미국에서 발생했던 문제가 특히 유럽 금융기관을 통해 전세계로 전파됐듯 그리스에서 발생한 문제 역시 금융기관 거래 관계를 통해 전유럽은 물론 전세계로 확산될 수 있다"고 밝혔다. 김위대 국제금융센터 연구위원은 "신뢰의 상실이란 점에서 과거 금융위기와 공통점이 많다"면서 "과거 금융위기가 민간 금융기관에 대한 신뢰 상실에서 비롯됐다면 이번 위기는 국가에 대한 불신이 기저에 깔려 있다"고 지적했다. ◇ "그리스사태는 국지적으로 끝난다" 김득갑 연구전문위원은 "유럽이 나서 위기 전이를 얼마가 과감하게 빠른 조치로 차단하느냐에 따라 위기 전파 여부가 크게 좌우될 것"이라며 "유럽과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과감한 조치를 통해 사태 해결에 나설 경우 유럽만의 문제로 끝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 위원은 그러나 "지원이 늦어진다면 위기가 포르투갈, 스페인, 영국 등으로 확산되고 세계 경제가 위기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신속한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위원은 "미국이 유럽에 투자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면서 "단기적으로 어려움은 있겠지만 금융위기 때처럼 금융 불안이 전세계로 번질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김위대 연구위원도 "과거 금융위기 때에는 모든 금융거래에 발을 담군 리먼브러더스가 중간에 서 대부분 금융시장 거래와 연관되며 파급 효과가 컸지만 이번의 경우에는 유럽에 국한된 것으로 글로벌 시장으로 연계된 수준은 아니다"고 진단했다. 그는 "미국과 아시아의 경기회복세가 유럽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양호하고 미국 국채 매수 세력도 견고하기 때문에 조정은 있지만 글로벌 시장으로 전파될 여건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 韓國에 미치는 영향은 "지금이 정점"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나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단기적일 것으로 예상했다. 김득갑 연구전문위원은 "우리 경제와 금융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현재가 정점으로 파악하고 있다"면서 "단기적으로는 어려움이 지속되겠지만 시스템 위기로만 번지지 않는다면 조만간 안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연구위원 역시 그리스사태가 전유럽적인 위기로 확산되지만 않는다면 견조한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는 한국과 아시아 각국에는 직접적인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위대 연구위원은 한국 시장 펀더멘털이 견고하고 유럽에 대한 위험 노출이 크지 않아 직접적으로는 큰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지만 심리적 영향이 오히려 더 클 것이라고 진단했다. 차희건기자 hgcha@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