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사율이 높은 병증(病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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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癌)이 발병하면 암세포를 제거하든지 포기하든지 양자택일해야 한다.
물론 억지로 떼려는 시도가 자칫 병세를 더욱 빠르게 악화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런 조치 없이 그대로 두는 것 역시 좋은 선택만은 아니다.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지난 2일 유로존과 국제통화기금(IMF)이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에 향후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1100억 유로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유럽중앙은행(ECB)은 그리스 국채를 신용등급에 상관없이 담보물로 인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유로존이 더 이상 신용평가사에 좌우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표명한 것이다.
이 정도면 사태가 해결될 듯 했으나 시장은 더욱 혹독하게 그리스를 몰아붙이고 있다.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콜럼비아대 교수는 그리스에 대한 지원합의가 결국 유로화의 종말을 가져오게 될 것이라 주장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도 그리스에 대한 지원이 유로화를 붕괴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의 달인 워렌 버핏 역시 지난 1일 오마하 퀘스트센터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그리스 문제를 럭비공에 비유했다.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들이 그리스의 퇴출을 주장한 것은 병세가 호전될 확률이 지극히 낮고, 그리스의 심각한 병증이 그 주변국으로 전염될 수 있음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경제가 병에 걸리면 즉각 자국의 화폐가치부터 낮추고 집중 치료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유로존 내에서 유로화라는 동일한 화폐를 사용하는 그리스의 경우 병에 걸려도 화폐가치를 절하시킬 방법이 없다.
게다가 유로존의 합의 하에 지원하기로 한 지원금의 금리는 5%에 달한다.
이 정도 이자율을 감내해야 하며 긴축 대책으로 허리띠를 졸라매야하는 그리스는 아마 2020년까지 국민들을 희생시켜야만 한다.
상황이 이렇게 된다면 정부 대책에 반대하며 연일 시위가 격화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다른 나라들도 지금 금융위기 이후 재정적자가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에 당장 누구를 도와줄 처지가 아니다.
그리스를 돕겠다고 하다가 자칫 모두에게 같은 문제가 유로존 전체로 확산될 수도 있는 문제이다.
이 때문에 시장의 곱지 않은 시선은 이제 그리스에서 유로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주변 국가에서도 부도 위험을 보여주는 CDS 프리미엄(신용파산스왑(CDS) 거래에서 신용위험을 이전한 대가로 지급하는 수수료)이 연일 치솟고 있다.
만일 그리스 문제 발생 초기에 그리스를 유로존으로부터 퇴출 시켰더라면, 유로화는 작지만 단호하고 엄격한 화폐로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로존 16개국은 그리스를 떼어내는 수술을 포기했다.
이미 유로존에서 재정적자를 GDP 대비 3%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약속을 지키는 나라는 거의 없다.
결국 이번에도 유로화의 하락에 베팅한 조지 소로스의 승리로 끝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