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 안팎의 인물들이 주고받는 편지 84통으로 구성된 김다은씨(48)의 장편 《모반의 연애편지》(생각의나무 펴냄).이 작품은 서간체 역사소설의 지평을 넓힌 수작으로 꼽힌다.

2008년 한글 자모에 얽힌 살인사건을 다룬 《훈민정음의 비밀》에 이어 2년 만에 내놓은 이 소설은 세조의 왕위 찬탈 과정과 조선시대 궁중 양식,'훈민정음 언해본'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을 15세기 인물들의 편지로 되살린 것.

수양대군(세조)이 계유정난을 통해 조카 단종을 폐위시키고 왕좌에 오른 지 11년째인 1465년,왕의 후궁 소용 박씨가 궐 밖의 남자 귀성군(세조의 동생인 임영대군의 아들)에게 연서(戀書)를 보낸 사실이 공개되면서 시작된다. 편지를 전달한 환관 · 나인들이 처형되고 박씨도 교살형을 당한다. 그는 죽기 전 '백팔 글자'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긴다. 연서를 본 세조가 뜻밖에 불교 대장경 '월인석보'를 찾으면서 이 편지는 진짜 연애편지인지,모반의 비밀을 간직한 증거인지 논란에 휩싸인다.

작가는 '나라말씀이 중국과 달라…'로 시작되는 훈민정음 언해본(諺解本)이 왜 '월인석보' 1권 첫머리에 묶여 있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에서 출발해 권력과 사랑의 이중주로 얘기를 확장한다. 그는 "현재 불교계 등에서 거론되고 있는 훈민정음 창제의 정치 · 종교적인 다른 목적을 벗겨내고 백성을 지극히 아끼고 사랑했던 세종대왕의 순수함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오직 인물들 사이의 편지로만 회상과 사건 서술을 풀어내고 있지만 익숙지 않은 독자라도 금방 빨려들어갈 만큼 흡입력이 강하다. 과장과 왜곡을 제어하는 동시에 역사적인 자료와 당시 사회 분위기를 섬세하게 복원해 낸 서간체 방식으로 허구와 역사의 경계선을 넘나들기 때문이다.

그는 "독일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프랑스의 '위험한 관계'처럼 국내에서도 대표적인 다음성(多音聲)적 서간체 장편소설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