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확정된 것 없다니까요…. 기다려 주세요. "

한 기업 재무담당 임원은 요즘 냉가슴을 앓고 있다. 재무구조개선 약정 체결 대상 기업으로 거론되면서 이를 확인하는 전화가 회사 안팎에서 빗발치고 있어서다. 약정을 맺으면 기업들은 계열사나 보유 자산 매각을 통한 군살빼기와 유상증자 등 자구노력을 해야 한다. 이 임원은 "약정 체결 대상 기업으로 거론되는 것만으로도 신뢰도에 타격을 받고 있다"며 "약정 체결 여부와는 상관없이 너무 큰 상처를 입었다"고 하소연했다.

약정 체결을 앞두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곳은 이 회사만이 아니다. 41개 주채무계열에 포함된 대기업 중 작년에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체결한 6개사와 함께 3~4개 기업이 추가 대상 업체로 꼽히고 있다. 대부분 조선 및 해운 관련 업체들이다.

은행들은 약정 대상 기업에 대한 세부 평가를 이번 주 내로 마무리하고 이달 말께 약정을 체결할 방침이다. 하지만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기업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개별 기업 및 업황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부채비율과 이자보상배율 등의 잣대를 기계적으로 들이댔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약정을 체결한 한진그룹도 흑자전환을 이유로 약정 체결 대상에서 제외해줄 것을 은행권에 강하게 요청하고 있는 상태다. 대한항공의 1분기 매출은 지난해 같은 때에 비해 14.8% 증가한 2조5990억원이다. 영업이익은 역대 최고치였던 2007년 1분기의 1514억원보다 45.4% 늘어난 2202억원에 달했다. 회사 관계자는 "항공산업의 특성은 무시한 채 실적이 가장 안 좋았던 해의 재무제표를 근거로 맺은 불합리한 약정"이라며 "올해 안에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조선업체인 성동조선해양과 SPP조선은 약정 체결 추가 대상 기업으로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선박 수주마저 끊겼다. 글로벌 선사들이 해당 조선사들의 유동성 문제를 들어 선박 발주를 꺼리고 있어서다. 국내 은행들도 이들 조선업체에 대한 선수금환급보증(RG)을 발급하지 않기 시작했다.

약정이 체결되기도 전에 사실상 선박 수주가 끊기면서 재무구조가 더 악화되고 있는 셈이다. 성동조선 관계자는 "주채권은행의 실사가 길어지면서 해외 선주들 사이에서 온갖 소문이 나돌고 있다"며 "약정 체결 전에 회사가 더 망가질 판"이라고 했다.

기업 인수 · 합병(M&A)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고 있는 점도 리스트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기업들의 고민이다.

이 와중에 그동안 거론되지 않던 기업들마저 온갖 루머에 시달리고 있다. 조선 및 해운업을 주력으로 삼고 있는 A그룹은 은행권과 신규 여신 문제를 놓고 심각한 갈등이 일고 있다는 소문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B그룹은 계열사 한 곳의 유동성 악화 루머로 인해 전 계열사의 주가가 폭락하는 사태까지 겪었다.

A그룹 관계자는 "정부와 은행권이 정확한 기준과 잣대를 통해 약정 체결을 조속히 마무리지어야 다른 기업들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나 소문이 잦아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