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작품이라면 몇억원에 달하는 가격과 재테크 같은 단어가 연상되잖아요. 그림 그리기의 순수성,예술을 통해 정체성과 자존감을 찾아가는 광부들의 모습을 보면 우리가 제대로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난 배우 권해효씨(45 · 사진)는 연극 '광부화가들'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광부화가들'은 어두운 갱도에서 석탄을 캐는 광부들이 광부노동자협회의 미술사 수업을 듣게 되면서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권익을 찾는다는 내용이다. 1930년대 국유 탄광촌이 민영화 되어가는 시대 상황 속에서 영국 광부들의 실화를 다룬 작품이다.

극중에서 이들을 가르치는 강사 라이언 역을 맡은 권씨는 광부들에게 자신의 삶을 그리도록 독려한다. 영국 애싱턴그룹이 소장한 광부들의 그림뿐만 아니라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고흐,세잔 등의 그림이 영상으로 만들어져 극 전체를 관통한다.

권씨는 "광부들이 약 50년 동안 그린 그림을 대형 스크린으로 보여주는데 그림 자체가 많은 것을 얘기한다"고 설명했다. "광부들의 유화와 수채화를 보면 점차 성장해가는 내면을 느낄 수 있죠.캔버스가 없어 판자에 그린 그림을 보면 놀라운 감동을 느낄 겁니다. "

그는 또 "기승전결과 같은 극적 드라마와 인물 사이의 갈등 구조가 없는 작품이지만 '빌리 엘리어트'로 잘 알려진 작가 리홀의 인물을 구체화한 능력은 놀랍다"고 말했다. "우리 (드라마 영화 연극) 작가들은 인물을 지나치게 관념적으로 묘사하는 면이 있는데 인물의 심리 변화와 사고의 성장까지 미세하게 드러내는 이런 작품은 배우에게 좋은 자양분입니다. "

다만 현지에서도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다양한 '슬랭(사투리)'의 맛을 살리기 힘들다는 게 번역극의 한계라고 그는 지적했다. "'왜 예술은 교육받은 지식인들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을까. 우리가 더 할 말이 많은 데'라는 대사가 있어요. 돈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삶의 가치와 예술 정신,행복,우리사회의 계층 문제에 대해 돌아보게 하지요. "

그는 "길게는 20년 동안 대학로에서 친하게 지낸 배우들과 팀워크가 워낙 좋아 연극도 더욱 재미있다"고 덧붙였다. 영화배우 문소리,TV 드라마 '아이리스'로 주목받은 윤제문 등이 출연한다. 이상우 연출.5~30일,명동예술극장.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