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캐릭터 제작자가 투자를 받겠다며 벤처캐피털 회사를 찾아왔다. 캐릭터를 갖고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관련 게임에도 적용해 볼 생각이라고 한다. 들고 온 캐릭터 도안이 신선하고 귀엽기는 하지만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다. 과연 투자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콘텐츠 산업의 투자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제조업보다 어렵다는 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벤처캐피털 등 전문 투자사들은 나름의 경험과 노하우를 갖고 평가하지만 이마저도 손실로 이어지는 경우가 상당하다. 정부 차원의 지원이라면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최근 공공기관들이 정부의 콘텐츠 산업 지원 강화에 맞춰 영화와 게임,캐릭터 등의 투자 가치나 지원 가치를 가늠할 수 있는 가치평가 모델 개발에 잇따라 나서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와 수출입은행,기업은행,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 등이 금명간 콘텐츠 신용평가 모델 개발 초안을 내놓을 예정이며 한국콘텐츠진흥원은 기술보증기금,과학기술정책연구원과 6월을 목표로 모델을 개발 중에 있다.

이들 기관에 따르면 콘텐츠 가치 평가는 우선 전문가 그룹을 통해 이뤄진다. 영화를 예로 들면 시나리오가 얼마나 짜임새 있고 완성도가 있는지 등을 전문가들이 판단한다.

객관적 잣대도 필요하다. 이에 따라 감독,(주연)배우,시나리오 작가,배급사,개봉관 수 등 흥행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을 선별해 각 요소별로 과거 통계치를 평가한다. 주연배우의 경우 출연 작품의 평균 관객 수와 최근 흥행 추이,배급사의 경우는 배급작품 성적 등이 점수로 매겨진다. 장르별로도 인기 장르인지 아닌지에 따라 가중치가 다르게 주어진다. 게임 역시 이런 방식으로 개발사,개발담당자,장르,시나리오 등으로 나눠 평가한다.

문제는 이렇듯 과거 통계 중심의 평가가 이뤄지다 보면 흥행 성적이 좋았던 대형 제작사들에 투자가 몰리고,과거 성적이 없는 신작들은 제대로 투자를 못받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해진다는 점이다. 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초기 상태의 콘텐츠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드는 것이 관건"이라며 "활발한 창작 · 개발 활동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어느 정도 리스크를 짊어지더라도 초기 콘텐츠에 과감하게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