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뮤지컬 배우와 스태프들은 '10-10'이에요. 오전 10시에 모여 밤 10시까지 함께 연습합니다. 자신의 장면이 끝나면 퇴근하는 미국 배우들과 다른 점이죠.이런 공통체 의식과 열정,가족적인 정서가 저를 다시 한국으로 불러온 것 같습니다. "

뮤지컬 '몬테크리스토'의 연출가 로버트 요한슨은 한국에서 꼬박 두 달간 작업한 소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18년간 미국 뉴저지 페이퍼밀 하우스극장의 예술감독으로 활동했던 그는 미국과 유럽을 오가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2007년 뮤지컬 '햄릿'(예술감독)에 이어 두 번째 내한,'몬테크리스토' 연출에 매달렸다.

지난 21일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개막,6월13일까지 공연되는 '몬테크리스토'는 작년 3월 스위스에서 초연된 화제작.라이선스 해외 공연으로는 처음으로 한국 무대에 올려졌다. '지킬 앤 하이드'의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의 최신작이다.

원작은 '삼총사'로 잘 알려진 프랑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의 동명 소설.프랑스 마르세유 출신의 젊은 선원 에드몽 단테스가 선장 지위를 탐낸 친구 당글라스와 자신의 약혼녀를 빼앗으려는 몬데고 등의 계략에 말려 14년간 악명 높은 감옥의 섬 '샤토 디프'에 투옥되면서 얘기가 시작된다. 우여곡절 끝에 탈옥한 그는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라는 가명으로 신분을 숨긴 채 막대한 재산과 사교술을 이용해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이들을 하나씩 파멸시켜 나간다. 올해 국내 뮤지컬계에서 최고의 기대작으로 꼽혀온 만큼 연일 매진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요한슨은 "배우들과 함께 일부러 스위스 원작을 보지 않았다"며 "라이선스 작품이지만 한국적인 색깔로 재창조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10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그대로 옮겨 오는 대신 소설의 본질에 초점을 맞췄다"며 "분노와 복수보다 회개와 용서,사랑을 얘기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몬테크리스토'의 캐스팅도 화려하다. 뮤지컬계의 대표주자 류정한을 비롯해 영화배우와 탤런트로 활동 중인 엄기준 · 신성록이 카리스마 넘치는 몬테크리스토 역에 트리플 캐스팅됐다. '시카고' 등을 통해 뮤지컬 배우로 인정받은 가수 옥주현과 '드림걸즈''선덕여왕'을 거치며 샛별로 떠오른 차지연이 여주인공 메르세데스 역을 함께 했다. 이들의 연기는 어떨까.

"한국 배우들은 원작을 모방하는 대신 그들만의 개성과 아이디어로 캐릭터를 완성하는 단계에 와 있습니다. 류정한씨는 베테랑답게 무게감 있고 카리스마 넘치는 백작 역을 잘 소화하고 신성록씨는 모험심 넘치고 역동적인 영웅을 보여줍니다. 칼싸움 장면이 압권이죠.엄기준씨는 표정이 다양하고 연기력도 좋아요. 노래 실력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모두 훌륭합니다. "

23일 저녁 공연에선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과 원작자 잭 머피가 커튼콜 무대에 올라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26일 미국으로 출국하는 요한슨에게 한국 뮤지컬에 대해 물었다. 그는 금방 눈시울을 붉혔다. 예상치 못한 반응이다. "객석을 떠나기 싫어하는 듯한 한국 관객들의 따뜻하고 진심어린 반응은 놀라운 감동이었습니다. 스태프와 배우들도 세계 최고 수준이고요. 한국은 브로드웨이 · 런던 · 빈 · 프라하 · 도쿄 · 시드니와 함께 세계 '톱6'자리를 다툴 겁니다. "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