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메디치가(家)는 예술에 대한 후원자의 상징이다. 금융업으로 기반을 잡은 메디치가는 코시모에서 피에로를 거쳐 로렌조 메디치에 이르기까지(1389~1492년) 100여년 동안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수많은 예술가와 사상가를 전폭적으로 후원했다.

메디치가 없이 르네상스를 논하기 어려운 건 이런 까닭이다. 지원과 후원이 필요한 게 예술가뿐이랴.가브리엘 샤넬은 어려서 고아원에 버려진 뒤 카바레에서 노래를 부르다 귀족인 에티엔 발장과 평생의 후원자인 아서 카펠을 만남으로써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성장했다.

예술에 대한 순수한 후원자나 사랑의 키다리 아저씨는 그러나 흔하지 않다. '해바라기'의 화가 고흐는 생전에 2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한 채 자살했고,에스티 로더 화장품사의 창업자 로더는 이혼 후 자신의 꿈을 이뤄줄 스폰서를 찾으려 했지만 실패하고 전 남편과 재결합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스폰서를 꿈꾼다. 예술가는 메디치가를,여성들은 아서 카펠 같은 키다리 아저씨를.이들만 그런 것도 아닐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자신을 지켜보며 아쉬울 때마다 도와주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는 건 인지상정이다.

누가 조금만 밀어주면 남보다 앞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더할 것이다. 이른바'스폰서 검사'도 그런 맥락에서 생겨났을 수 있다. 건설업체 사장이 20여년 동안 검사들에게 접대와 상납을 해왔다는 내용을 폭로한 MBC PD수첩 '스폰서 검사'방송이 천안함 사태로 가뜩이나 침울한 국민들을 공황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대검찰청이 외부인사를 포함한 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해 조사한다고 나섰지만 '도대체 누가 누구를 조사한단 말이냐'라는 비판까지 나오는 마당이다.

공짜는 없다. 스폰서들의 각종 후원은 당장 뭔가 요구하기 위한건 아니라도 장차 어려운 일이 생길 경우에 대비한 보험용이다. 접대 내용을 일일이 적어뒀다는 것만 봐도 '인간적으로 존중하거나 좋아해서'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검찰비리가 불거질 때마다 거론되는 스폰서 문제가 근절되지 않는 건 만일의 경우 변호사로 나서면 된다는 인식에서 비롯되는 건지 모른다. 일정기간 변호사 자격을 정지시키거나 최악의 경우 박탈하는 방법도 생각해봄 직하다. 그렇지 않곤 누구 말마따나 고리를 끊을 방도가 없어 보이는 까닭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