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주 나이액에 있는 팰리세이즈 파크몰 2층의 구두 · 액세서리 매장 '알도'.8일(현지시간) 오후,평일인데도 예닐곱명의 손님들이 구두를 고르고 있다. 매장 점원인 도리스양은 "젊은 여성들 사이에 브랜드가 잘 알려진 덕에 매장을 찾는 고객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한다. 터키 출신인 그녀는 잠시도 한곳에 서 있지 못할 정도로 바쁘다. 최근 판매 현황을 묻자 "할인 판매를 하지 않아도 100달러씩 하는 구두를 두 켤레씩 사가는 사람이 있을 정도"라고 답한다.

이날 매장을 찾은 고객들은 봄맞이 쇼핑객들이 대부분이다. 뉴저지 티넥에 사는 흑인 여성인 셰일라씨는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뜻하지 않게 두 켤레를 사버렸다"며 "구두와 함께 봄옷을 사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매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미국인들이 전후 최악의 경기 침체를 맞아 그동안 꽉 닫아왔던 지갑을 조금씩 열고 있다. 아직은 탄력적인 경제 회복을 주도할 정도는 아니지만 경기회복 기대감을 키워줄 만하다. 연초부터 정보기술(IT) 및 가전 제품 쪽 수요가 뚜렷하게 회복된 데 이어 최근 들어선 백화점 의류 체인점 매출이 큰 폭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9개 소매 체인점 매출을 파악하는 리테일메트릭스 조사에 따르면 3월 체인점 소매 판매(동일점포 기준)는 작년 같은 달에 비해 8.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리테일메트릭스의 켄 퍼킨스 사장은 "체인점 소매 판매 실적을 파악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가장 큰 판매 증가율을 기록한 것"이라며 "의류 액세서리 가구 등의 판매가 살아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백화점,할인점,의류 체인점 매출은 미국 소매 판매의 약 10%를 차지한다. 하지만 경기 침체 후 생필품만을 사오던 미국인들이 재량(discretionary) 구매를 늘리고 있다는 점에서 소비 회복 청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화창해진 날씨에 4월 초 부활절을 앞두고 쇼핑객들이 몰리면서 예상 밖의 판매 증가를 보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맨해튼 매디슨가에 몰려 있는 고가품 상가도 올 들어 조금씩 활기를 찾아가는 모습이다. 첼시에서 화랑을 운영하고 있는 바버라 글래스톤씨는 "수익성이 개선된 월가 금융사들이 직원들에게 대규모 보너스를 지급하면서 올 들어 예술품을 사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거품이 최고조를 달했던 2007년 소비수준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하지만 '절약 피로증'에 시달려 온 고소득층이 조심스럽게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

중고가품을 판매하는 백화점 매출도 뚜렷하게 증가하고 있다. 2월 중 매출이 10.4% 증가했던 노드스트롬은 3월에는 17%의 매출 증가율을 기록했다. 자동차역시 럭셔리 판매 매장부터 활기를 되찾고 있다.

각종 지표로 봐도 소비는 매우 완만하긴 하지만 살아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기상 악화에 따른 근로시간 감소로 소득이 정체된 2월의 소비가 증가했다는 점에서 상당수 월가 이코노미스트들은 경기 회복의 청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월가에서는 인플레이션을 감안해 연율로 환산한 1분기 소비증가율이 3.1%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2007년 이후 가장 빠른 소비 회복세다.

미국 경제 성장의 70%를 차지하는 소비가 살아나면서 '더블 딥(반짝 상승 후 다시 침체)'에 대한 우려가 상당히 해소된 상태다. 이코노믹아웃룩그룹의 버나드 바우멀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 소비자들이 자신감을 찾아가고 있는 게 확실하다"며 "갇혔던 수요가 폭발하면서 소비가 미국 경제 회복을 이끌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 소비가 완전히 살아났다고 확신하긴 이르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고용시장이 정상화되고 은행들의 신용공여가 활성화될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란 지적이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1분기 소비 지출은 3.3%로 회복되겠지만 3,4분기는 소비지출 증가율이 각각 1.0%에 그쳐 경제 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이관우 기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