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 해 중국발(發) 수요 증가로 예상을 뛰어넘는 실적을 올렸던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이 올 들어서도 호조세를 이어가고 있다. 연초부터 국제 유가 상승세와 맞물려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등 대표 화학제품의 가격이 오르고 있는 데다 중동 지역의 신 · 증설 설비의 가동 중단 등으로 반사이익을 보면서 사업 수익성이 좋아지고 있다.

선진국 실물경기의 완만한 회복과 개도국의 민간 소비 증가 등으로 올 하반기까지 석유화학 업종이 강세를 띨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올 들어 주춤해질 것으로 예상됐던 중국 수요가 여전히 꾸준한 것도 이 같은 시장 예측에 힘을 보태고 있다.

◆제품가 상승이 원료가 부담 상쇄


작년 말 이후 이어지고 있는 국제유가(두바이유 기준)는 현재 배럴당 80달러 안팎을 오르내리고 있다. 유가가 뛰면서 화학제품의 기초 원료가 되는 나프타 가격도 동반 상승하고 있다. 작년 6월 t당 598달러에 머물던 나프타 가격은 3월 말 현재 t당 736달러로 23.1% 올랐다.

이 같은 원료값 상승에도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이 높은 수익을 기록하는 이유는 제품 가격 상승세가 원료값 못지 않게 가파르기 때문이다. 범용 제품인 저밀도 폴리에틸렌(LDPE) 가격은 작년 6월 t당 1193달러에서 지난달 1470달러로 23.2% 상승했다. PP 가격도 같은 기간 1084달러에서 1284달러로 18.5% 뛰었다.

업계 관계자는 "유가 상승으로 원료값 부담이 가중된 것이 사실이지만 제품 가격 상승이 이를 상쇄하고 있다"며 "올 하반기까지는 견조한 제품 가격 상승으로 수익성이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해 중국 정부가 시행한 내수 진작 정책에 따라 늘어나고 있는 중국 시장 내 화학제품 수요도 국내 석유화학 업체의 실적 호조를 받쳐주고 있다. 향후 경기 회복기에 대비한 중국 내 투기 수요까지 발생하면서 중국 수출이 증가하는 추세다.

◆이상기후로 경쟁사 공급 차질


작년 말 이후 중국 중동 지역의 경쟁사 공장이 가동 차질을 겪고 있는 것도 국내 업체의 실적 개선에 도움이 되고 있다.

중국 두샨지PC가 운영하고 있는 연간 100만t 규모의 신장 공장은 작년 12월 화재 발생으로 가동을 완전히 멈춘 상태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이상기후로 공장 가동에 차질을 빚고 있다. 얀삽,얀펫,아이비엔 루슈드 등 사우디 공장들은 지난해 말 갑작스런 폭풍우로 피해를 입어 일제히 가동을 중단했다.

사우디 국영 석유화학 기업인 사빅은 자회사들의 가동 차질과 신 · 증설 지연을 이유로 아시아 고객사에 1~2월 PE 및 PP 판매량을 계약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 업계 관계자는 "사우디 지역에서는 가동 중단 장기화 가능성을 점치는 투기 수요가 발생하고 있다"며 "올 상반기 이 지역 공장들의 정기 보수까지 겹쳐 국내 업체들이 반사이익을 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동 · 중국 공급 폭탄은 여전히 부담


중동과 중국에서 진행 중인 생산설비 신 · 증설은 국내 업체에 여전히 부담이다. 올해 두 지역의 신 · 증설 규모는 작년 4분기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진 해외 신 · 증설 규모(400만t)보다 30.5% 많은 522만t이다. 업계에서는 올해 신 · 증설 물량이 연말 이후 시장에 풀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올해 중국 지역의 신 · 증설 물량이 크게 증가하는 것도 눈에 띈다. 작년 초 중국 정부가 발표한 내수 진작 정책에 힘입어 급증한 화학제품 수요를 자체적으로 충당하기 위해 현지 석유화학 업체들이 발빠르게 투자에 나서고 있는 것.중국 최대 석유화학 기업인 시노펙의 자회사 ZRCC가 상반기 중 연간 100만t 규모의 설비 투자를 진행하는 등 올 한 해 중국 지역의 신 · 증설 규모는 192만t에 달한다.

업계 관계자는 "중동 중국 지역 신 · 증설 설비 가동이 본궤도에 오르기 전까지 품질 격차를 더 벌려야 경쟁력을 잃지 않을 수 있다"며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동남아 등 신규 시장 개척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