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꽃물결을 타고 온다. 꽃물결의 첫 파문은 매화가 일으킨다. 광양 섬진강변의 매화마을이 이땅의 봄소식을 처음 전해주는 곳이 된 까닭이다. 올해도 어김없다. 폭설을 동반한 꽃샘추위에 잠시 움찔거렸던 매화 꽃망울이 이번 주말께는 만개할 것으로 보인다. 자! 따스한 봄볕이,그윽한 꽃내음이 그립다면 광양으로 달려갈 일이다.

Take1 하양저고리, 파랑치마

광양 섬진강 물길과 나란히 달리는 861번 지방도 변의 봄은 매화꽃으로 별천지를 이룬다. 그 중심에 청매실농원이 자리해 있다. 청매실농원은 전국에서 가장 먼저 매화나무 집단재배를 시작한 곳.매실 명인 홍쌍리씨가 집념으로 일군 매화꽃동산이기도 하다. 일제시대 일본에서 광부로 일했던 홍씨의 시아버지 고 김오천옹이 처음 이곳 산비탈을 갈기 시작했다. 이 일대는 당시만 해도 밤나무가 많은 '밤골'이었다. 김오천옹은 일본에서 가지고 들어온 묘목을 심어 밤나무 1만주,매화나무 2000주의 농원을 개간했다. 그러던 밤골이 매화단지로 바뀐 것은 순전히 홍씨의 고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시집 오기 전 진해 벚꽃장을 갔는데 너무 좋았어요. (홍씨의 고향은 밀양이다) 그래서 해마다 갔어요. 근데 여기 시집온다고 오니까 벚꽃 지가 뭔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벚꽃은 4월에 피는데,매화는 3월에 피는 설중매거든요. 여기를 천국으로 만들어 사람들을 품어 안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생각했어요. 답은 밤나무를 베고 매화나무를 심는 것이었죠."

당시 밤은 곧 돈이었다. 밤 한 가마니가 쌀 두 세 가마니 값이었다. 홍씨의 '매화천국작전'이 반대에 부딪힌 게 당연했다. 시아버지하고의 사연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홍씨는 매화꽃이 좋았는데 시아버지는 "꽃이 밥 먹여주느냐"며 걱정이 심했다. 농사의 농자도 몰랐던 홍씨는 밤마다 꿈마다 도망쳤지만 결국은 꿈을 이루었다. 홍씨는 사람들이 마음의 찌꺼기를 모두 버리고 갈 수 있는 공간으로 청매실농원을 만든 게 무엇보다 좋다고 했다.

청매실농원을 들어서면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을 찍은 초가집 세트장이 나온다. 이 초가집을 중심으로 곳곳에 시비가 세워진 문학동산이 펼쳐져 있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문학동산 일대를 가득 덮은 매화꽃 풍경이 마음을 빼앗는다.

Take2동백꽃 붉은 옥룡사지

산비탈 가득한 매화 꽃구름과 땅바닥을 덮은 보리싹의 색상조화에, 하얀 저고리 파란 치마를 입은 수줍은 시골처녀 이미지가 물씬 풍긴다. 섬진강 모래톱과 강 건너 하동 땅도 한눈에 잡힌다. 농원 뒤편의 짧은 대나무숲길도 운치있다. 2000개가 넘는 재래 장독 풍경은 더 말할 게 없다. 올해는 매화꽃길을 좀 길게 산책할 수 있다. 소학정주차장에서 청매실농원까지 '쫓비산'(뾰족한 산)허리를 타고 가는 산책길이 정비돼 있다. 4.5㎞ 정도로 2시간가량 매화를 비롯한 봄꽃 내음에 푹 젖을 수 있어 좋다.

청매실농원에서 섬진강을 왼편에 끼고 내려가면 나오는 망덕포구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윤동주 시인의 친필 유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역사의 현장이 있다. 국문학자 정병욱(전 서울대 교수)의 옛 가옥이다. 윤동주는 연희전문을 졸업하던 해인 1941년 시집을 펴내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일본에 가기 전 원고 한 부를 동문인 정병욱에게 맡긴다. 이후 정병욱이 학병으로 끌려가면서 그의 모친에게 원고를 맡겼고,모친은 해방이 될 때까지 마루바닥을 뜯고 그 밑에 원고를 숨겨놨다는 것이다. 망덕포구는 벚굴이란 커다란 굴이 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섬진강 물길이 남해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서 자라는 '강굴'인데 그 알맹이 크기가 보통 굴의 5배나 된다. 물속에 있을 때는 벚꽃이 핀듯한 모습이라거나, 벚꽃이 필 때쯤 제일 맛있다고 해서 벚굴로 불린다.

옥룡사지 동백숲도 광양의 자랑거리다. 백운산의 지맥인 백계산 남쪽에 있는 옥룡사지는 8세기 초 도선국사가 세우고 35년간 주석했다가 입적한 절터라고 한다. 도선이 처음 절을 세울 때 땅의 기운이 약한 것을 보완하기 위해 동백나무 숲을 조성했다고 한다. 동백나무의 생명주기는 300년 정도.도선이 심고 나서 세 사이클을 돌았다고 하니 숲이 조성된 지 1000년은 족히 된 셈이다. 6000여 그루의 동백이 울창한 숲은 천연기념물 489호로 지정돼 있다.

도선의 옥룡사는 주춧돌이 발견되지 않아 복원이 어렵다고 한다. 다만 이 일대 마을을 '승뱅이골'이라고 했던 것을 보면 절의 규모를 유추해볼 수 있다. 비석거리를 거쳐 운암사로 넘어가는 짧은 산길의 동백숲이 특히 운치있다.

광양=김재일기자 kjil@hankyung.com


여행 TIP

서울에서 경부ㆍ중부고속국도~대전통영(중부)고속국도~진주분기점 남해고속국도~진월나들목~861번 지방도~망덕포구,매화마을.동서울터미널에서 동광양터미널까지 하루 12회,남부터미널에서 4회 버스가 다닌다. 여수행 비행기를 타거나 용산역에서 순천행 기차를 탄다. 청매실농원(061-777-4066)에서 열리는 제14회 광양매화문화축제는 21일까지 계속된다.

광양읍의 호텔필레모(061-761-8700)가 깨끗하다. 그랜드모텔(061-761-3600),CCK모텔(061-762-8345) 등 모텔이 많다. 중마동의 파라다이스호텔(061-793-7474)도 추천숙소.광영동 일대에서도 큰 모텔을 쉬 찾을 수 있다. 백운산자연휴양림(061-797-2655)의 산막이 훌륭하다. 도선국사마을(061-763-5820)등에서 민박을 할 수 있다.

광양불고기가 널리 알려져 있다. 얇게 썬 쇠고기에 양념을 발라 구리 석쇠에 굽는다. 백운산 참숯을 쓴다는 게 특징.대체로 단맛이 강한 편이다. 금목서회관(061-761-3300),삼대광양불고기집(061-762-9250),시내식당(061-763-0360) 등이 있다. 1인분 호주산 1만4000원,한우 1만8000~2만원.망덕포구의 벚굴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2~4월에 맛볼 수 있다. 하나로횟집(061-772-3637)등이 있다. 20㎏ 한 망태기를 가져가면 4만5000원,식당에서 먹으면 9만원.광양시청 문화홍보담당관실(061)-797-2731,www.gwangyang.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