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여왕 김연아가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을 이겨내고 조국에 금메달을 안겼다. 한 · 일 국가대항전과 동갑내기 라이벌전으로 부각되며 온 국민의 기대에 자칫 주눅이 들어 실수하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김연아는 한국인으로서 처음으로,그것도 역대 최고 점수로 금메달을 땄다. 이에 대해 많은 이가 김연아의 '강심장'에 경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스포츠 선수들은 경기에 앞서 미리 부정적인 상황을 가정해 스스로 불안해하는 '예기 불안'에 빠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부담감을 동반한 예기 불안은 자신의 기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게 만든다. 실제로 나쁜 결과가 닥치면 죄책감을 느껴 장기간 후유증에서 헤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강심장이란 예기 불안을 떨치고 놀라운 집중력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는 역량을 말한다. 강심장은 자질(trait)과 상황(state)에 의해 좌우된다. 즉 타고 나기도 하고 훈련에 의해 강화되기도 한다. 김연아 선수나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는 자질면에서 확실히 탁월한 집중력을 타고난 강심장이다.

관중이나 가족의 관전,예전보다 기량이 월등히 향상된 상대방,심판진 구성,언론매체의 보도,신체적 · 심리적 컨디션 등 상황적인 요소에 떨지 않는 강심장은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과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길러진다. 이는 부모로부터 시작된다. 부모 스스로 크고 작은 변화에 민감하고 동요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자녀도 불안감에 쉽게 노출된다. 또 어려서부터 부모로부터 적절한 칭찬과 견제를 받고 자라야 한다. 아이가 주어진 과제를 훌륭하게 수행했는데 부모의 칭찬이 부족하거나 무관심한 경우,반대로 아이가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나무라지 않고 그냥 넘어간다면 자신에 대한 믿음이 형성되기 어렵다. 아울러 스포츠 선수라면 코칭 스태프를 절대적으로 신뢰해야 높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선수들은 상황적 요인을 이겨내기 위해 많은 훈련을 한다. 한국 LPGA 골프계의 맏언니인 박세리는 담력을 키우기 위해 중고생 시절 한밤에 공동묘지를 가야 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극한 훈련으로 담력을 키운다 해도 실제 경기력이 향상되는 것과는 비례 관계가 약하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 양궁 선수들이 소음 속에서 화살을 날리는 훈련을 한 것도 상황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이지 강심장을 만드는 것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다. 강심장은 예기 불안을 떨치고 침착하게 제 성적을 올리는 게 핵심이기 때문이다.

선수라면 준준결승전에서는 5만큼 떨리고,준결승전에는 7만큼 떨리고,결승전에는 10만큼 요동칠 것이다. 이럴 때 선수는 떨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불안 수준에 맞는 나름대로의 해소책을 갖고 있어야 하며 이를 잘하는 선수가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다. 스포츠 경기에서 강심장을 유지하는 데 자질적 요소와 상황적 요인이 둘 다 중요하겠지만 아무래도 경기 결과는 후자에 의해 더 크게 좌우되기 마련인 듯싶다.

김연아는 이번 올림픽 쇼트 게임에서는 경쟁자인 아사다 마오가 연기한 직후에,프리스타일 게임에서는 아사다 직전에 자신의 플레이를 선보였다. 일반적으로 스포츠 경기에는 선공이 유리하다. 김연아가 쇼트 게임에서 역대 자기 최고 점수를 올린 마오의 연기를 보고나서도 흔들리지 않고 제 기량을 발휘한 것은 이성과 감정을 분리해내는 힘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스포츠 선수의 기억은 코치의 지침과 같은 외재적인 기억과 자기 몸에 박혀서 저절로 연출돼야 하는 내재적 기억으로 나눌 수 있다. 스포츠는 외재적 기억을 내재적 기억으로 승화시켜 몸으로 표출하는 경쟁이다. 0.5초만 연기의 흐름이 흔들려도 엉망이 되기 쉬운 피겨 경기에서 만약 김연아가 내재적 기억을 자연스럽게 표현하지 못했다면 아사다에게 패배하고 말았을 것이다.

일반인도 김연아의 성공에서 배울 게 있다. 면접시험이나 회사 프레젠테이션,방송 출연이나 대중 강연에서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인지의 재구성'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동요되지 않는 힘을 길러야 한다. 먼저 감정과 이성을 분리할 줄 알아야 한다. 실패할까봐 초초해 하기보다는 '나는 나를 믿는다''잘 될것이다''이 순간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한다'는 신념으로 행동에 나서야 한다. 둘째,대중 앞에서 떨리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떨리는 것을 거부하기보다는 받아들이고 이를 줄일 방법을 모색한다. 셋째,미리 많은 것에 대비한다. 철저한 준비 앞에 장사 없다. 넷째,감정과 이성의 동요에 대한 조절을 믿을 수 있는 객관적인 사람에게 의지한다.

한덕현 교수 <중앙대 용산병원 정신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