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낙태 찬반논쟁이 한창 고조되던 1980년대 말,샌프란시스코의 유력 일간지에 흥미로운 기사가 한편 실렸다. 제목은 '낙태의 천국 코리아'.글의 요지인 즉,개발도상국에 머무르고 있는 코리아에서도 낙태의 자유가 허용되고 있거늘,선진국이라 할 미국에서 낙태 불허가 대세를 이루고 있음은 지극히 후진적 발상이란 것이었다. 기자의 무지 앞에서 허탈한 웃음을 지어봄도 잠시,낙태 천국이란 오명 앞에 심히 부끄러웠던 기억이 새롭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지금 한국사회도 낙태 논쟁의 무풍지대를 벗어나 서서히 열풍 속으로 진입해가고 있음은 일면 반갑기까지 하다. 저출산 세계 1위란 국가적 위기상황에서도 낙태율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낙태 논쟁은 한번쯤 치러야 할 홍역 아니겠는지.다만 미국과 유럽의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의 시행착오를 최소화함은 물론이요,성(性)을 규정해온 역사와 문화,더불어 성을 둘러싼 규범과 가치가 서구와는 매우 상이함 또한 간과해선 안 되리란 생각이다.

실제로 미국의 경험에 주목한다면,미국 선거에선 낙태 허용 및 불허 여부 자체가 유권자들의 표심을 민감하게 움직이는 역할을 해온 만큼,낙태가 정치적 쟁점의 선봉에 서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태아의 생명을 존중하는 'Pro Life' 대 모성의 선택권을 중시하는 'Pro Choice'가 팽팽한 대결을 벌여온 것 또한 익히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친(親)생명'을 표방한 Pro Life계 보수 진영이 승리했다. 모성의 권리를 강조했던 Pro Choice계 페미니스트 진영은 슬로건 경쟁에서 보기 좋게 패했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생명의 존엄성이란 절대적 명분 앞에서 그 누군들 선택의 권리란 이해관계를 위해 손 들어줄 것인가.

시간이 흐른 뒤,자신들의 패배를 인정한 페미니스트 진영에서는 새로운 해석이 제기됐다. Pro Life,Pro Choice 공히 생명친화적 가치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굳이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엄마 뱃속의 생명을 중시했던 반면,후자는 지금 현실 세계에서 절박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엄마 자신의 생명을 우선시했다는 것이다.

1980년대 초반까지도 인구 과잉성장의 압력을 두려워했던 한국사회에서 낙태 관련법이 사문화된 상태로 남아 있었음은 자연스런 일이었을 게다. 이제 상황은 급격히 반전돼 낙태를 향한 사회적 시선이 부정적 낙인으로 기울고 있음을 보자니,몇 가지 기우가 고개를 든다. 낙태 논쟁이 여론재판으로 흐르면서 무조건 찬성 아니면 무조건 반대의 두 가지 선택지만을 강요하는 건 아닌지,행여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된 여성들이 희생자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비난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중굴레에 놓이게 되는 건 아닌지,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이 대목에서 우리에게 또 다른 시사점을 제공해주는 연구 결과가 있다. 미국과 유럽 공히 혼전 성관계를 자유롭게 허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은 10대 임신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한 반면 유럽에선 10대 임신이 눈에 띄게 낮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선 10대 임신이 고교 중퇴를 낳고 결국은 빈곤으로 연결돼 국가의 사회복지비용을 증대시키는 악순환을 이루고 있다. 결국 두 지역의 10대 임신율 차이는 10대의 성에 대해 어떠한 가치와 규범을 견지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으로 판명됐다. 곧 미국에선 자녀들의 성을 통제와 규제의 대상으로 본 반면 유럽에선 책임과 자율의 영역에 두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낙태 논쟁 또한 사회적 갈등과 분열로 치닫기보다,후발주자의 이점을 최대한 살려 보다 성숙하게 널리 중지를 모아 진전되길 기대한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