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재정위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유로화 약세에 베팅하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9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서 지난 1월27일~2월2일 일주일간 유로화선물 순매도 포지션은 76억달러(4만계약) 늘어났다. 단일통화에 대한 주간 순매도로는 전례 없는 규모다. 유로화 약세를 예상하는 헤지펀드와 외환투자가들이 급증했다는 것으로,그리스의 재정위기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6개국) 내 다른 국가로 전염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로화 가치는 달러화에 대해 지난 주말 8개월여 만에 최저치인 유로당 1.3583달러까지 떨어졌다. 8일 유로당 1.3683달러로 소폭 반등하긴 했지만 지난해 11월25일 고점(유로당 1.514달러)에 비해선 10% 떨어진 것이다. 유로화 가치는 엔화에 대해서도 근 1년 만의 최저치를 보이고 있다.

유로화가 약세를 면치 못하면서 각국의 외환보유액에서 유로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메릴린치는 향후 2년간 글로벌 외환보유액에서 유로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25% 선으로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전 세계 외환보유액은 지난해 3분기 말 현재 7조5200억달러로 이 가운데 유로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27.75%다. BOA메릴린치의 스티븐 피어슨 외환전략담당 책임자는 "유럽연합(EU)이 2012년까지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2.8%로 줄이겠다는 그리스의 재정적자 감축안을 승인했고,포르투갈도 올해 재정적자를 GDP 대비 8.3%로 줄이겠다고 밝혔지만 투자자들은 실현가능성에 여전히 의문을 품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재정적자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주요국 외환보유액에서 유로화의 입지는 좁아질 것"이라며 "이를 대신해 캐나다 달러와 금,이머징마켓 통화의 비중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피어슨은 유로화 가치가 올해 말엔 유로당 1.28달러,내년 말엔 1.24달러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한편 유로화뿐 아니라 영국 파운드화도 맥을 못추고 있다. 파운드 가치는 8일 파운드당 1.5533달러까지 내려갔다. 지난해 5월21일 이후 8개월여 만에 최저다. 파운드는 엔화에 대해서도 약세다. 재정적자 문제가 소위 'PIGS(포르투갈,아일랜드 · 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 국가뿐 아니라 영국에서도 심각한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주말 여론조사 결과 오는 5월께 치러질 영국 총선에서 어느 당도 과반의석을 점하기 힘든 상황인 것으로 나타나면서 정부의 재정적자 감축 노력이 추진력을 얻기 힘들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영국의 올 재정적자는 GDP 대비 13%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