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기업은 자신들의 성공을 모델화하려는 위험에 빠진다. 그렇게 되면 온갖 관심이 내부로 향하고 안에서 진행되는 일에만 집착,변화에 둔해진다. ' 1993년 쓰러져가던 IBM을 맡아 보란 듯이 살려낸 루 거스너의 얘기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기업이든 사람이든 목표를 이뤘다고 생각하는 순간 위험은 시작된다. "

성공의 덫에 걸려든 건가. 제조업의 신화라던 도요타의 대규모 리콜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미국 정부의 정치적 의도가 개입됐다는 음모론 대두에도 불구,일본 언론조차 문제는 차량 결함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다 여론에 밀려 뒤늦게 대처한 도요타 측의 무성의와 위기관리 능력 부재에 있다며 비판하고 나섰다.

문제의 크고 작음은 소비자가 어떻게 느끼느냐에 달린 건데 오만과 자기 과신에 빠져 잠깐이라도 브레이크 이상을 경험한 소비자가 느꼈을 불안을 헤아리지 않은 채 사안의 축소와 변명에 급급했다는 것이다. 1989년 렉서스 출시 당시 작은 클레임에도 고객의 집까지 찾아가던 초심을 잃어버리고 소비자 불만에 늑장 대응한 나머지 사건을 키웠다는 질타도 쏟아졌다.

기업이 잘 나갈 경우 최고라는 오만과 현실 부정 등 자기파괴 습관이 생겨난다는 잭디시 세스 교수(미국 에모리대)의 지적처럼 자기과신에 따른 안일한 대처가 어떤 결과를 일으키는지 입증한 셈이다.

도요타의 이번 사태는 고객의 소리를 외면한 데 기인했다는 점에서 제너럴모터스(GM)의 전철과 상당 부분 닮아 있다. GM은 1970년대 말 오일쇼크 당시 소형차에 대한 고객의 관심을 무시한 채 대형차에만 주목,미국에선 소형차가 이익을 낼 수 없다는 억지 논리 아래 일본 회사에 판매망을 빌려줌으로써 일본차의 미국 진출 기반을 마련해주는 오류를 저질렀다.

80년대엔 기술 교류차 도요타 본사에 파견 나갔던 직원이 도요타에서는 GM이 개발 중인 신기술 시험을 끝낸 데다 도요타의 생산성 또한 GM의 두 배라는 사실을 보고했으나 최고라는 자만에 빠져 있던 경영진은 그럴 리 없다며 묵살했다. GM의 파산 원인이 일반적인 지적처럼 레거시 코스트(직원 및 퇴직자에 대한 과도한 복지비용)에만 있는 게 아니란 얘기다.

세스 교수에 따르면 오랫동안 승승장구하거나 독점적 지위를 차지해온 기업은 자신들의 DNA에 대한 과신 내지 자만으로 눈과 귀가 먼다고 한다. 보고 싶은 것,듣고 싶은 것만 보고 듣거나 때로는 알아도 모르는 체 한다는 것이다.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기 싫은 데다 그것을 인정할 경우 닥치게 될 변화에서 비롯될 신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결국 하루라도 빨리 문제를 인식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찾으면 해결할 수도 있을 문제를 쉬쉬 하거나 시스템은 놔둔 채 개인 문제로 여기고 덮으려 하다 돌이키기 어려운 지경까지 간다는 것이다.

도요타가 이번 위기 이후 어떻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위기를 또 하나의 기회로 만들어낼지,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기까지 상당 기간 고전을 면치 못할지 알 길 없다. 분명한 건 이번 사태에 대한 대응과 앞으로의 자세가 도요타의 앞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리라는 사실뿐이다.

루 거스너는 취임 이후 '시장이 모든 업무의 원동력이며 성공의 잣대는 고객 만족도와 주식 가치다,직원의 요구사항과 업계 변화에 재빨리 대응한다' 등 8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상장기업의 평균수명이 40년 미만인 상황에서 2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듀폰의 지속성장 비결은 '일상의 혁신'이라고 한다.

있을 때,잘 나갈 때 자기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하는 게 어디 기업뿐이랴.개인 역시 승승장구할 때일수록 교만해져 멋대로 행동하진 않는지,함부로 눈을 내리까는 적은 없는지,주위의 관심과 배려가 당연하다고 여기진 않는지 살펴봐야 한다. 오만과 방심이 화를 부르는 건 개인도 마찬가지다. 상황은 변하고 영원한 갑은 없다.

수석논설위원 ps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