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도요타를 위한 변명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요즘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동네북이다. 대량 리콜(회수 후 무상수리) 사태로 세계 언론,특히 미국 언론으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다. LA타임스 등은 도요다 아키오 사장이 지난 5일밤 사과 회견을 하며 숙인 고개의 각도까지 시비를 걸었다. '참회의 깊은 절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ABC방송 기자는 도요다 사장에게 영어로 답변해줄 것을 요구한 뒤 그의 서툰 영어(broken English)를 꼬집기도 했다.
아무리 혹독한 비판을 당해도 도요타로선 할 말이 없게 됐다. 차량결함에 대한 늑장 대응으로 일각에선 은폐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도요타는 일부 차량의 가속페달이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 문제가 있다는 걸 3년 전부터 알았지만 결함을 시인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렉서스를 탄 가족 4명이 폭주사고로 사망한 뒤에야 리콜을 마지못해 결정했다. 일본 최고의 글로벌 기업이란 도요타 이미지와는 너무나 달랐다.
도요타는 왜 고객 안전을 무시하고 리콜을 미적거렸을까. '세계 최고 기술'에 대한 도요타의 자기과신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2년 전쯤 도요타가 나고야의 렉서스 공장을 주요 내외신 기자들에게 처음 공개했던 적이 있다. 당시 도요타는 시동을 건 렉서스의 엔진 위에 물을 채운 칵테일 잔을 올려 놓는 시범을 보였다. 놀랍게도 잔 속의 물은 미세한 파동도 일으키지 않았다. 엔진에 진동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이어 안내한 곳은 공장 내 '렉서스 장인 도장(道場)'이었다. 이곳에선 20대 근로자들이 눈을 가리고 상자 속에 담긴 볼트와 너트를 한 줌에 정확히 5개,7개씩 집어내는 '손 감각 훈련'을 하고 있었다. 도요타가 세계 언론에 자신들의 '모노즈쿠리(장인정신으로 최고 제품 만들기)' 현장을 보여주며 자랑스러워하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다.
"최고의 품질은 도요타의 생명이다. " 도요타 사람들을 만나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디자인이나 마케팅 등은 몰라도 품질만큼은 세계 최고라는 강한 자부심이 배어 있다. 기술과 품질은 도요타 사람들에겐 목숨과 같은 것이었다. 그런 도요타이기에 자신들의 기술적 결함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끝장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도요타는 '캠리' 등 8개 차종의 가속 페달이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 문제가 불거졌을 때 "미국 부품으로 미국에서 생산한 차만 문제"라고 강조했다. '일본에서 우리 손으로 만든 차는 이상이 없다'는 말이었다. 도요타는 아마 끝까지 이번 리콜이 자신들의 기술적 결함 때문이 아니라고 믿고 싶을지 모른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리콜이야 말로 도요타로선 받아 들이기 힘든 '불편한 진실'이다. 결국 도요타식 모노즈쿠리에 대한 집착과 확신이 고객안전을 향한 눈마저 가려 늑장 리콜을 초래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물론 그렇다고 도요타가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차량 결함이 객관적 사실로 드러난 이상 도요타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더구나 전량 일본에서 만든 하이브리드카 '프리우스'마저 브레이크가 순간적으로 듣지 않는 문제가 터진 상황이다. 이젠 현실을 겸허히 인정하고 서둘러 문제를 개선하는 게 최선일 뿐이다. 그게 창업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은 도요타가 사는 길일 뿐 아니라 사방에서 쏟아지는 소나기 비난을 멈추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
아무리 혹독한 비판을 당해도 도요타로선 할 말이 없게 됐다. 차량결함에 대한 늑장 대응으로 일각에선 은폐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도요타는 일부 차량의 가속페달이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 문제가 있다는 걸 3년 전부터 알았지만 결함을 시인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렉서스를 탄 가족 4명이 폭주사고로 사망한 뒤에야 리콜을 마지못해 결정했다. 일본 최고의 글로벌 기업이란 도요타 이미지와는 너무나 달랐다.
도요타는 왜 고객 안전을 무시하고 리콜을 미적거렸을까. '세계 최고 기술'에 대한 도요타의 자기과신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2년 전쯤 도요타가 나고야의 렉서스 공장을 주요 내외신 기자들에게 처음 공개했던 적이 있다. 당시 도요타는 시동을 건 렉서스의 엔진 위에 물을 채운 칵테일 잔을 올려 놓는 시범을 보였다. 놀랍게도 잔 속의 물은 미세한 파동도 일으키지 않았다. 엔진에 진동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이어 안내한 곳은 공장 내 '렉서스 장인 도장(道場)'이었다. 이곳에선 20대 근로자들이 눈을 가리고 상자 속에 담긴 볼트와 너트를 한 줌에 정확히 5개,7개씩 집어내는 '손 감각 훈련'을 하고 있었다. 도요타가 세계 언론에 자신들의 '모노즈쿠리(장인정신으로 최고 제품 만들기)' 현장을 보여주며 자랑스러워하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다.
"최고의 품질은 도요타의 생명이다. " 도요타 사람들을 만나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디자인이나 마케팅 등은 몰라도 품질만큼은 세계 최고라는 강한 자부심이 배어 있다. 기술과 품질은 도요타 사람들에겐 목숨과 같은 것이었다. 그런 도요타이기에 자신들의 기술적 결함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끝장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도요타는 '캠리' 등 8개 차종의 가속 페달이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 문제가 불거졌을 때 "미국 부품으로 미국에서 생산한 차만 문제"라고 강조했다. '일본에서 우리 손으로 만든 차는 이상이 없다'는 말이었다. 도요타는 아마 끝까지 이번 리콜이 자신들의 기술적 결함 때문이 아니라고 믿고 싶을지 모른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리콜이야 말로 도요타로선 받아 들이기 힘든 '불편한 진실'이다. 결국 도요타식 모노즈쿠리에 대한 집착과 확신이 고객안전을 향한 눈마저 가려 늑장 리콜을 초래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물론 그렇다고 도요타가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차량 결함이 객관적 사실로 드러난 이상 도요타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더구나 전량 일본에서 만든 하이브리드카 '프리우스'마저 브레이크가 순간적으로 듣지 않는 문제가 터진 상황이다. 이젠 현실을 겸허히 인정하고 서둘러 문제를 개선하는 게 최선일 뿐이다. 그게 창업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은 도요타가 사는 길일 뿐 아니라 사방에서 쏟아지는 소나기 비난을 멈추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