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이 드러내는 문제는 원래 공약한 바와 달리'짝퉁자율''관제자율'로 가고 있다는 데 있다. 외고 폐지론을 비롯해 서울시교육청이 그나마 '제한된' 학교선택제에서 후퇴한 데서 보듯이 때론 좌파정부의 교육정책보다 더 좌파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보다 정작 더 중요한 결함은 교육현안에 매몰돼 잘 부각되진 않지만,애초 작은 정부를 지향한 공약이 21세기 새로운 패러다임에 초점을 맞춰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21세기는 지식기반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사회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에는 여러 가지 특징이 있지만,핵심적 아이디어는 역시 '융합'이다. 영어로 fusion, convergence, hybrid로 불리는 이 말은 단순한 물리적 결합의 의미를 뛰어 넘는다. 기능과 발상의 초월적 전환을 의미한다. 예컨대 휴대폰에서 시작된 휴대용 단말기는 단순한 전화기가 아니라 화상통화,자료검색,이메일,게임,엔터테인먼트 등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한다. 같은 맥락에서'디자인'은 과거 패러다임에서 상품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포장기술 같은 응용미술의 한 분야로 여겨졌지만,새로운 패러다임에선 여러 가지 분야와 다양한 기능의 융합이 요구되는 일종의 혁신 모델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이 관점에서 이명박 정부 초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로 통합 개편한 것은 '교육'과 '과학 · 기술'의 융합이라는 관점에서 높이 평가받을 일이다. 그러나 교과부는 집권 2년이 된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당시 두 부처의 물리적 병합 형태에 머무르고 있다.

교육과 과학 · 기술의 정책이 따로따로 가기 때문이다. 성과가 있다면 장관 자리 하나가 줄어든 것밖에 없다. 그나마 교과부 장관은 형식적인 수장일 뿐이고 교과부의 실세는 따로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제대로 되려면 창의성을 요구하는 과학기술과 교육이 패러다임 도약의 차원에서'융합'되고'디자인'되어 집행됐어야 한다.

과학 · 기술의 창발을 위해 교육 정책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야 하며,어떤 모습의 학교가 요구되며,어떤 시너지 효과를 도모한다는 말을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작년 나로호 발사의 경험을 과학기술교육 융합이라는 거시적 차원에서 논의한 적이 없다. 나로호 실패 문제는 오로지 과학기술 개선과 보완이라는 미시적 측면에 국한돼 관심이 집중됐을 뿐이다.

반면에 교육은 새로운 패러다임은커녕 더 이상 실행되지 않는 낡아빠진 좌파이념에 여전히 함몰돼 있다. 교육정책은 늘 왜곡된 분배의 성역(聖域)으로 간주한 결과,수월성은 주요 아젠다가 되지 못한 것이 이미 오래된 일이다. '천재 1명이 10만명을 먹여살린다'고 간파한 이건희 회장의 오래 전 발언을 교육과 과학기술,기업,지식기반사회 전반에 걸친 융합의 관점에서 파악하려 하지 않았다. 지난 정부의 사학법 개악과 현 정부에서 나온 외고 폐지론처럼,수월성 교육은 과도한 공(公)개념과 그릇되고 단순한 평등 이념에 의해 왜곡된다. 인성교육을 내세워 19단을 암기하는 인도의 수학교육을 암기교육이라고 무조건 폄하한다. 아직도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여기는 평준화 정책은 여전히 학교 선택과 학생선발을 원천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교육과 과학기술을 교과부로 통합한 초심을 잃지 않으려 한다면 교육정책과 과학기술정책의 융합,새로운 정책 모델의 디자인,존속적 혁신과 파괴적 혁신의 선택과 집중이 가능한 패러다임을 추구하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융합과 디자인을 별도의 교육논리가 있는 것처럼 주장하면서 교육과 무관한 기업생존 전략으로만 치부해선 안 된다.

김정래 < 부산교대 교수·교육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