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일부일처제같은 형식 말이다. 두 심장이 함께 뛰고 폐가 함께 숨쉬고 내 어깨뼈가 그의 빗장뼈 속에 파고들던 그 포옹을 잠시도 잊을 수 없다. …(중략) 포옹이 풀렸을 때,우리의 두 눈은 꽃처럼 많은 겹으로 피어 있었다. '

소설가 전경린씨(48)의 신작 장편소설 《풀밭 위의 식사》(문학동네)는 사랑 이야기다. 열여섯 어린 나이에 풀밭에서 치명적인 고통을 경험한 여자 누경이 한 남자를 사랑하고,다른 남자에게 사랑받으면서 유년기의 상처를 긍정하는 과정을 감각적으로 그렸다.

전씨는 "지속되는 사랑은 아름답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면서 "변화의 계기가 되는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사랑은 지속보다 변화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사랑을 통해 자기의 한계까지 가보면서,상대를 사랑하는 동시에 자신을 발견하고 변화시킬 수 있죠."

소설은 '겹꽃잎처럼 피어 있는' 눈을 지닌 누경을 짝사랑하는 기현이 있는 현재로 시작해,누경의 일기장을 통해 과거 열렬하게 사랑했던 유부남 강주가 살았던 과거로 갔다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형식을 취한다.

풀밭에서 벌어진 일의 트라우마로 제대로 된 이성관계를 맺을 수 없었던 누경이 처음으로 제대로 사랑할 수 있었던 남자가 강주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누경에게 '존재의 핵 속에 새겨진 한 남자'와 같았던 강주와 사랑에 빠지는 건 아주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가정이 있는 몸인 강주이기에 누경의 사랑은 순탄치 않다. 이를 두고 누경은 "우린 마치,국경 너머에서 자기만의 언어로 각자 짝사랑을 하는 가난한 외국인들 같다"고 표현한다.

결국 누경의 사랑은 파국을 맞는다. 그러나 전씨는 그럼에도 누경의 사랑은 의미가 있다고 했다.

"강주에 대한 사랑은 첫사랑보다 더 절실한 '근원적인 사랑'입니다. 첫사랑이 이뤄지지 못한다는 말이 있듯,근원적인 사랑에도 당연히 이별이 있지요. 그러나 누경은 강주를 사랑하면서 소녀 시절 입은 상처의 근원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됩니다. 오래된 상처를 부정하고,잊어버렸다고 착각했던 누경은 사랑을 통해 과거와 정면으로 마주치게 되지요. 옛 상처를 인정하고 회복하게 됩니다. 강주를 향한 사랑은 누경에게 열고 지나가야 하는 문 역할을 했어요. "

사랑의 순간을 섬세하게 잡아내는 표현이 소설 전체를 감싸안고 있다. 부치지 못할 편지에다 강주를 향한 사랑을 절절하게 털어놓는 누경의 독백은 아름답다. '눈을 감으면,당신 눈 속의 눈동자가 내 눈 속에 고인 물처럼 흔들려요. '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