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짐 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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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톰슨은 1909년 미국에서 섬유사업가의 5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뉴욕에서 수습생활을 하다 1940년 CIA 전신인 OSS에 들어갔다. 2차 대전 중 북아프리카와 유럽을 거쳐 태국에 부임했으나 전쟁이 끝나자 미국으로 돌아갔다.
46년 아내와 이혼하고 태국으로 다시 온 그는 서양인의 극동 여행 급증을 확신,오리엔탈호텔 재건사업에 참여하지만 동업자와의 갈등으로 그만뒀다. 그런 다음 뛰어난 품질에도 불구하고 값싼 수입 직물로 인해 고사 직전이던 태국 실크에 주목,이를 살릴 방법을 강구했다.
톰슨이 샘플을 들고 뉴욕의 패션잡지 보그를 찾아가자 편집장은 유명 디자이너로 하여금 태국 실크 소재 드레스를 디자인하게 한 뒤 보그에 게재했다. 가능성이 엿보이자 그는 수제 실크를 만들던 현지인을 고용,재료와 염료만 공급한 뒤 전처럼 각자 자기 집에서 작업하도록 했다.
톰슨에 의해 되살아난 태국 실크는 51년 뮤지컬 '왕과 나' 의상에 사용되면서 본격적으로 부활,의상은 물론 인테리어 소품에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톰슨의 사업이 번창하면서 태국 사회엔 온갖 소문이 나돌았다. 사업은 위장이며 본업은 미국의 정보요원이란 것 등이었다.
소문에 상관없이 태국은 물론 아시아 각지의 고미술품과 민예품을 수집하고 59년엔 방콕 시내에 태국의 옛 건축양식을 이용한 전통가옥을 지었던 톰슨은 그러나 67년 휴가지 말레이시아에서 실종됐다.
톰슨은 이렇게 떠났지만 그의 집은 기념관으로 변해 방콕 관광 필수코스가 됐다. 뿐만 아니라 그의 이름을 딴 '짐 톰슨'은 세계 30여개 국에 전문매장을 둔,글로벌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패션과 인테리어 소품으로 유명해진 짐 톰슨은 가구에 이어 레스토랑 브랜드로까지 확장됐다.
짐 톰슨 제품의 무늬는 태국의 민화와 코끼리,꽃을 주 모티브로 한다. 태국적인 것에 현대감각을 가미한 세련된 디자인과 너무 비싸지도 싸지도 않은 적정한 가격을 더해 관광객의 눈을 사로잡고, 이를 바탕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 점차 명품화시키는 과정을 거친 셈이다.
실크 스카프나 쿠션 커버의 경우 부피가 작은 만큼 기념관에 들어왔다 하면 누구라도 한두 개씩은 사들고 나간다. 과연 우리는 언제 우리 것을 바탕으로 한 세계적 패션브랜드를 갖게 될 것인가. 안타깝고 부럽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46년 아내와 이혼하고 태국으로 다시 온 그는 서양인의 극동 여행 급증을 확신,오리엔탈호텔 재건사업에 참여하지만 동업자와의 갈등으로 그만뒀다. 그런 다음 뛰어난 품질에도 불구하고 값싼 수입 직물로 인해 고사 직전이던 태국 실크에 주목,이를 살릴 방법을 강구했다.
톰슨이 샘플을 들고 뉴욕의 패션잡지 보그를 찾아가자 편집장은 유명 디자이너로 하여금 태국 실크 소재 드레스를 디자인하게 한 뒤 보그에 게재했다. 가능성이 엿보이자 그는 수제 실크를 만들던 현지인을 고용,재료와 염료만 공급한 뒤 전처럼 각자 자기 집에서 작업하도록 했다.
톰슨에 의해 되살아난 태국 실크는 51년 뮤지컬 '왕과 나' 의상에 사용되면서 본격적으로 부활,의상은 물론 인테리어 소품에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톰슨의 사업이 번창하면서 태국 사회엔 온갖 소문이 나돌았다. 사업은 위장이며 본업은 미국의 정보요원이란 것 등이었다.
소문에 상관없이 태국은 물론 아시아 각지의 고미술품과 민예품을 수집하고 59년엔 방콕 시내에 태국의 옛 건축양식을 이용한 전통가옥을 지었던 톰슨은 그러나 67년 휴가지 말레이시아에서 실종됐다.
톰슨은 이렇게 떠났지만 그의 집은 기념관으로 변해 방콕 관광 필수코스가 됐다. 뿐만 아니라 그의 이름을 딴 '짐 톰슨'은 세계 30여개 국에 전문매장을 둔,글로벌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패션과 인테리어 소품으로 유명해진 짐 톰슨은 가구에 이어 레스토랑 브랜드로까지 확장됐다.
짐 톰슨 제품의 무늬는 태국의 민화와 코끼리,꽃을 주 모티브로 한다. 태국적인 것에 현대감각을 가미한 세련된 디자인과 너무 비싸지도 싸지도 않은 적정한 가격을 더해 관광객의 눈을 사로잡고, 이를 바탕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 점차 명품화시키는 과정을 거친 셈이다.
실크 스카프나 쿠션 커버의 경우 부피가 작은 만큼 기념관에 들어왔다 하면 누구라도 한두 개씩은 사들고 나간다. 과연 우리는 언제 우리 것을 바탕으로 한 세계적 패션브랜드를 갖게 될 것인가. 안타깝고 부럽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