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여름,낙마사고로 허리를 크게 다친 적이 있다. 미국 애리조나주 세도나에서 말을 타다가 일어난 사고였다. 당시 내가 타던 말의 이름은 '수'였다. 똑똑하고 얌전한 녀석인데,타박타박 잘 걷다가 갑자기 앞발을 치켜들더니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무엇에 크게 놀랐던 모양이다. 고삐를 놓친 채 말 등에 엎드려서 한참을 달렸다. 겨우 고삐를 다잡는 순간,수가 나를 힘껏 튕겨냈다. 나도 모르게 공중에서 몸을 회전하는 낙법을 써서 다행히 머리를 다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허리에서 '우지끈' 하는 소리가 들렸다.

놀란 사람들이 멀리서 나를 부르며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꼼짝 못한 채 바닥에 누워있는데,갑자기 세도나의 푸른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깊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몸에 통증이 몰려오는 심각한 상황에서도 하늘이 아름답다고 느끼니,우리 뇌는 참 신기하다.

왕진을 온 의사는 한 달간 꼼짝 말고 누워 있으라는 처방을 내렸다. 하지만 나는 의사가 나가자마자 몸을 움직여 볼 궁리를 했다. 마음과는 달리 누워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호흡과 진동 수련밖에 없었다. 허리를 좌우로 살살 움직여보았다. 통증이 척추신경을 타고 손끝,발끝까지 퍼져나갔다. 그래도 참고 계속했다.

그 덕에 며칠 만에 다시 걸을 수 있을 만큼 회복됐다. 그런데 마음 한 켠에 자꾸 걸리는 것이 있었다. 바로 낙마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말을 떠올리기만 해도 몸은 바짝 긴장했다. 낙마로 인한 두려움이 나의 다른 활동이나 창조적인 사고를 방해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자 조바심까지 나기 시작했다.

몸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기다리라는 주위의 만류에도 나는 다시 수에게 갔다. 녀석도 지난 사고를 기억하는 듯,주눅 든 눈빛으로 나를 슬슬 피했다. "괜찮다. 너도 나만큼이나 놀랐을 게다. " 녀석을 쓰다듬어 주고는 말 등에 올라타려는 순간,역시 몸이 움찔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말 등에 잠시 올라탔다가 내려오기를 반복했다. 그 다음에는 말을 타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고,속도를 조금씩 높이면서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반복했다.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유일하게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다'라는 말을 남겼다. 누구에게나 두려움이 있다. 변화를 예측할 수 없는 미래가 두렵고,다시 실패할까봐 두렵고,지금 이 순간의 선택이 최선이 아닐까봐 두렵다. 그러나 진정한 용기는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살면서 배운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두려움은 생각만으로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직 행동을 통해서만 몰아낼 수 있다. 극복하지 못한 두려움은 두려움으로 남지만 행동으로 이긴 두려움은 우리를 성장시키는 아름다운 경험이 된다.

이승헌 글로벌사이버대학 총장 ilchi@ilch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