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에서 취재하다 보면 중국 특파원들의 열정을 접하는 경우가 많다. 열흘 전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주최한 신년 기자회견장에서 인사를 나눈 중국 여기자도 그랬다. 뉴욕 주재 특파원인 그는 1시간가량 진행된 칸 총재 회견을 취재하기 위해 6시간 넘게 차를 운전해 워싱턴에 왔다고 했다.

이날 칸 총재는 중국 기자들로부터 질문세례를 받느라 바빴다. 서너 명의 중국 기자들은 자국 정부가 내놓은 경기대책에 대한 평가와 중국이 직면한 도전과 과제는 무엇이냐고 돌아가며 물었다. 한 기자는 세계 경제위기 극복 이후 IMF가 맡아야 할 의무와 역할을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중국의 언론 첨병들은 국무부 등 미 정부 부처의 브리핑 현장에도 출입해 본국으로 기사를 자유롭게 타전한다. 한 중국 기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현란한 말 빼고는 이뤄놓은 성과가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기후변화 대응에서 미국이 중국에 비용을 떠넘기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경제 성장에 힘입어 중국 기자들 또한 잔뜩 어깨를 펴는 모습이다. 이는 워싱턴이 열린 취재공간이기에 가능하기도 하다.

활짝 개방돼 있기는 미 의회 로비공간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대규모 로비자금을 뿌리면서 적대적인 미 의원들을 하나둘씩 친중파로 돌려 세우고 있다. 미 법무부에 따르면 중국은 2008년 3~8월 6개월 동안 워싱턴 로비업체인 호건 하트슨을 끼고 38만9985달러,7~12월 6개월 동안 패턴 보그스와 존스 데이를 통해 26만4000달러와 10만4000달러를 각각 의회 로비에 사용했다.

미국인들의 뇌리에는 중국이 깊숙이 침투해 있다. 월스트리트저널과 NBC뉴스가 미국인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20년 뒤 세계의 리더가 될 국가로 가장 많은 39%가 중국을 꼽았다. 미국은 37%였다. 1997년 조사 때는 중국이 9%,미국이 56%로 정반대였다.

중국의 해킹과 검열 의혹으로 최근 촉발된 구글 사태의 확산은 '닫힌 중국'과 '열린 미국' 간 충돌이다. 민다훙 베이징온라인매체협회 회장은 중국 정부에 인터넷 공간의 자유보장을 촉구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을 공격했다. 그는 "중국의 인터넷 발전방안이나 관리방법은 전적으로 중국인들의 일"이라며 "인터넷 문제에 관해 중국은 미국의 어떤 가르침도 필요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요즈음 워싱턴 서점가에서 주목받는 마틴 자크의 주장과 일치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칼럼니스트이며 런던스쿨 방문교수인 그는 '중국이 세계를 지배할 때'라는 저서를 통해 중국이 외국의 사상을 흡수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부를 축적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워싱턴의 정책 입안자들이 희망하는 대로 서구의 가치와 제도를 받아들이기보다 중국 방식을 고집한 채 세계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식당 증후군(chinese restaurant syndrome)'이란 게 있다. 화학조미료(MSG)를 많이 사용하는 중화요리를 먹고 난 뒤 두통,가슴통증 등 알레르기와 유사한 증상이 일부 미국인들 사이에 나타나면서 생겨난 의학용어다. 중국 음식이 불만이면 입에 대지 않으면 되겠지만 닫힌 중국과 갈수록 접촉면을 넓혀야 하는 열린 미국으로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김홍열 워싱턴=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