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유치 과학자로 1977년 귀국한 그는 한국자원개발연구소에 몸담고 월성 원자력발전소 내진설계 자문 등을 맡았다. "당시에는 국내에 지진을 전공한 사람이 없어 한전 사람들이 내 눈치 좀 봤습니다(웃음).원자력발전소 G값(내진값)이 0.3인데 인공적으로 보강할 테니 제발 기준을 낮춰 달라는 식이었죠.이후 내가 추천한 G값이 한국의 기준이 되다시피 했습니다. "
김 소장은 이후 북한이 땅굴을 파고 내려와 국민들을 긴장시킬 때 국방부 의뢰를 받아 땅굴 탐사 작업에도 참여했다. 1979년 한양대 자연대 교수로 자리를 옮긴 그는 1994년 학계에서는 처음으로 지금의 '한국지진연구소' 전신인 '한양대 지진연구소'를 세워 연구 역량을 강화했다. "국가에서 1990년대부터 지진 쪽에 눈을 뜨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연구 과제도 많아졌습니다. "
2007년 8월 한양대에서 정년퇴임한 그는 현재 지진 관련 회사의 고문과 지식경제부 자문역,극동지진학회 편집위원장,문화체육관광부 문화재 전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문가는 없는데 각 기관이 관측기계만 비싼 값에 사들이고 있어요. 정작 시급한 것은 전문가 양성과 소프트웨어 선진화이지만 장비도 우리 실정에 맞게 빨리 국산화해야 합니다. " 김 소장은 최근 저술활동과 장비 국산화에도 힘을 쏟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