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가 자신의 죄를 갖고 검찰 및 법원과 거래를 하는 플리바게닝(유죄인정 심사제) 도입 계획이 전면 취소됐다. 대신 피의자 또는 참고인이 공범 등 제 3자의 범행 수사에 협조하면 사법처리 수위를 조절하는'면책조건부진술제'와 형사 피해자가 법정에서 검사에 준해 피고인을 심문하는'피해자참가제'를 도입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 장관 자문기구인 형사소송법개정특별위원회는 최근 2010년도 추진과제에 대한 토의를 거친 결과 이같이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플리바게닝은 검사가 수사에 협조한 피의자(변호인)와 유죄 부분 등을 합의한 후 법원에 신청하면 심사를 통해 양형을 최종 결정하는 것이다. 이는 임채진 전 검찰총장이 2008년 도입 필요성을 공개 언급한 이후 관심을 모았다. 법무부 관계자는"심도있는 논의를 거친 결과 국내 정서에 맞지 않아 도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특위는 대신 면책조건부진술제를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플리바게닝과 혼동되지만 자신의 죄가 아니라 제3자와 관련된 범행 사실에 대해 검찰수사 등에 협조한다는 점이 다르다. 이는 사실상 박연차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 상당 부분 적용됐다.

수백억원대 뇌물공여 및 조세를 포탈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박 전 회장은 최근 항소심에서 법정 최저형에 못 미치는 2년6개월로 감형됐다. 대검 관계자는"진술의 대가는 수사 담당 부서 내에서도 직접 관계된 주임검사와 보고라인 등 극소수만 알고 있다"며 "음성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검찰 내 관행을 제도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위는 도입 여부를 두고 법원과 치열한 기싸움을 하고 있는 영장항고제도 강력히 추진하기로 했다. 현재 검찰은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에 대해 보강수사를 통한 영장재청구만을 할 수 있다. 법원은 "영장재청구를 두고 굳이 영장항고제를 도입하는 것은 검찰권의 남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특위는 검찰뿐 아니라 피의자도 구속영장 발부에 대해 항고할 수 있게 해 법원의 반대를 차단하겠다는 방침이다.

특위는 이와함께 2008년 말 일본이 도입한 피해자참가제도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포함하기로 했다. 이는 형사재판에서 보조인 수준에 머물렀던 피해자를 적극적인 참여자로 바꾸는 것이다. 현재 형사피해자는 방청석에 앉아서만 재판을 지켜볼 수 있다.

한 대형 로펌의 K변호사는 "현행 형사소송 체계에서는 피해자보다 가해자가 판사에 대한 접근권이 월등히 높아 가해자에 대한 온정주의 판결 등 여러 부작용이 지적돼 왔다"며 "공정하고 실질적인 재판을 위해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특위는 중요참고인구인제의 경우 영장 없이도 출석을 강제하는 미국 등과 달리 법원의 구인영장에 의해서만 가능하도록 할 방침이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장자연 사건'과 같이 혐의는 있지만 구체적 단서가 없어 피의자로 특정하지 못하는 다수 참고인을 조사하지 못하는 상황이 개선될 수 있다. 특위는 올 상반기 내 공청회를 열고 하반기 입법예고를 거쳐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올해 12월께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