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까지 원전 80기 수출'이란 정부의 비전이 신문 지면을 가득 메운 14일.원전 관련 부품업체인 중소기업 A사장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엄청나게 반가운 소식"이라면서도 "중소기업 입장에선 할 얘기가 있다"고 했다.

첫째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문제였다. 그는 "대기업이 동일한 납품 건에 대해 입찰 횟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납품단가를 낮추는 일이 원전 산업에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예컨대 최초 입찰 때 '부품 길이는 얼마'라고 해놓고 나중에 '부품 길이가 조금 늘었다'며 재입찰을 붙이고 때로는 이 횟수를 수차례 늘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입찰 횟수가 늘어날수록 납품업체로선 경쟁업체가 써낸 입찰 가격을 의식하게 되고,결국 스스로 납품단가를 깎을 수밖에 없다는 게 A사장의 지적이다. 그는 "대놓고 직접 '납품단가를 낮추라'고 하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내릴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둘째는 '국산 부품에 좀 더 애정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얘기였다. A사장은 "미국 원전업체들은 입찰 때 자국 중소기업에 가점을 주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그런 게 없다"며 "공기업은 WTO(세계무역기구) 기준 때문에 그렇게 하기 어렵지만 민간기업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원전 1기를 짓는 데는 약 200만개의 부품이 필요하다고 한다. 불량부품이 1개만 있어도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중소기업이 납품단계에서 겪는 애로가 커질수록 기술 개발 의욕이 떨어져 결국 '한국형 원전'의 경쟁력도 저하될 수밖에 없다.

물론 납품 받는 대기업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치열한 경쟁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모두 갖춰야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자동차회사인 일본 도요타마저 최근 부품업체에 '향후 3년 내 납품가격 30% 인하'를 요구할 정도로 비용 절감은 글로벌 기업의 생사를 가르는 문제다.

한국이 작년 말 원전 강국들을 제치고 UAE(아랍에미리트)에서 원전 4기를 수주한 원동력은 한국형 원전의 안전성과 가격 경쟁력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A사장의 말이 와닿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사는' 상생 노력 말이다. 쉽지 않지만 A사장의 희망이 실현되길 기대해본다.

주용석 경제부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