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에 회사와 조합원들의 운명을 더 이상 맡겨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

파업 161일째인 14일 민주노총 탈퇴 찬반투표에 참여한 울산항 예선 노조의 김모 조합원(50 · 선장)은 "생활비가 없어 보채는 가족을 뒤로 한 채 회사 대신 농성장으로 향한 지난 5개월이 악몽 같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다른 조합원 최모씨(52 · 선원)는 "노사협상을 민주노총에 맡긴 게 얼마나 참담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고 후회했다.


울산지역 노사분규 역사상 최장기 기록을 낳은 울산항 예선 노조 파업은 이날 전체 조합원 98명 가운데 91명이 투표에 참여해 87명(95.6%)이 민주노총 탈퇴와 예선 3사의 연합 노조를 설립하는 안에 찬성하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이들은 지난해 6월 노조를 설립할 때만 해도 노조 전임자 인정과 노조 사무실 마련 등 노조활동과 관련한 기본 사항을 사측에 요구했다. 그러나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울산항 예선 노조의 파업과 관련해 한 노동전문가는 "선원들의 근로여건을 개선하려는 취지로 출발한 파업이 감정대립으로 번지면서 장기화됐다"며 "민주노총이 다른 사업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직률이 취약한 전국 6대 항만을 조직화하기 위해 울산항 예선 노조 파업에 개입했다는 따가운 시선도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날 투표를 마치고 나온 한 조합원은 "지난해 8월7일 기습파업으로 항만이 전면 마비되는 것을 보면서 이번 사태가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울산항만해양청 이증수 항만물류과장은 "울산항은 최소 3~4일만 마비돼도 곧바로 현대자동차의 생산 중단으로 이어지고 10일가량 장기화되면 에쓰오일과 SK에너지의 생산이 중단될 수밖에 없을 만큼 노조 파업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8월7일 예선 노조가 울산항 예선 29척 중 26척의 운항을 전면 중단하면서 항만 마비는 현실화됐다. 하지만 예선 노조의 기습파업은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국토해양부와 울산해양항만청이 전국 항만의 여유 예선을 총동원해 항만을 조기 정상화하면서 파업은 힘을 잃었다. 여기에 회사 측은 노조 파업 3일째에 직장폐쇄를 단행하고 민주노총을 탈퇴하지 않으면 협상을 재개할 수 없다는 강경 방침을 밝혔다. 이에 맞서 민주노총은 지난해 10월 임성규 당시 위원장이 직접 울산에 내려와 재정적 지원을 약속하는 등 파업을 독려하면서 사태는 더욱 꼬여갔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11월 부산항 예선 노조가 파업을 전격 철회하고,울산 조합원 21명이 무더기로 노조를 탈퇴하면서 노조 기반이 급격히 흔들렸고 이는 곧바로 반(反)민주노총 정서로 확산됐다.

160일간의 파업이 남긴 것은 130억원에 이르는 회사 측 손실과 조합원들의 생활고,국민의 따가운 시선 등 상처뿐이었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