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의 대형세단 '에쿠스'와 기아자동차의 쿠페형 세단 '포르테 쿱'이 미국 한 자동차매체가 진행한 '최악의 자동차 모델명 10'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미국 자동차 전문 매체 카즈닷컴(Cars.com)은 소속 에디터들이 지난 30년 동안 출시된 차량의 이름을 살펴보고 논의를 거쳐 선정한 결과인데요. 다소 주관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패트릭 올슨 카즈닷컴 편집장은 "뭐든 첫 인상이 중요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면서 "자동차를 평가하는 입장에서는 가끔 자동차의 이름이 그 차의 첫 인상을 좌우하게 됨을 느끼게 된다"며 선정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카즈닷컴 측은 이번에 선정한 차종들은 그 차의 가치나 성능, 디자인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이름만을 평가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총 10개의 차종들 중 현대차의 '에쿠스'와 기아차 '포르테 쿱'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유를 들어볼까요?

하위권부터 살펴보면 10위에 오른 포드의 고급브랜드 '링컨'은 3글자의 알파벳으로 이루어진 차명이 "제대로 기억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링컨은 지난 2007년까지만 하더라도 '컨티넨털', '내비게이터' 등의 상징적인 차명을 사용해 깊은 인상을 주었으나 최근에는 'MKZ', 'MKX', 'MKS' 등 MK로 시작하는 이름을 고수하며 소비자들을 혼란스럽게 한다는 게 이유입니다. 나름 공감이 가네요.

현대차 에쿠스는 미국 내 출시되기도 전에 9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절찬리에 상영중인 연극 '에쿠스'와 같은 이름을 갖고 있어 부정적인 인상을 준다는 지적입니다.

영국 극작가 피터 셰이퍼가 각본을 맡아 지난 1973년 영국에서 초연된 뮤지컬 에쿠스는 말(馬)에 대한 애증이 지나쳐 말들의 눈을 막대기로 찌르고 다니다 재판에 회부된 소년 '알런'의 얘기를 담았죠. 이처럼 음울한 극중 내용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이 에쿠스를 9위에 올린 이유라네요.

8위는 도요타 '야리스'로, 우스꽝스러운 이름이라는 다소 주관적인 평을 들었습니다.

7위의 기아차 '포르테 쿱'도 조금 억울할 수 있겠습니다. '미국인들의 영어에 대한 자부심을 건드렸다'는 게 이유인데, 트집에 가깝게 여겨집니다. 심지어 미국이 영어를 만든 것도 아닌데 말이죠.

카즈닷컴 측은 "포르테 쿱을 좋아하지만 쿠페(coupe)라는 단어를 멋대로 쿱(koup)으로 바꾸고는 뭔가 새로운 이름처럼 내세우고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미국인들에게서 동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6위에 오른 스바루의 크로스오버차량(CUV) 'B9 트라이베카'는 정말 이름을 잘못 지은 케이스로 보입니다. B9,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됐던 전폭기의 이름입니다. 여기에 뉴욕 맨하튼시 인근 도시인 트라이베카의 이름을 붙여놓았으니, 테러라도 벌이겠다는 건지…. 더군다나 일본차이니 미국인들의 오해는 깊어져만 갈 것 같습니다.

그밖에 폭스바겐의 SUV 투아렉은 '미국인들이 정확하게 발음하기 힘든 이름'으로 5위에 올랐습니다. 4위인 포드 '프로브(Probe)'의 사전적 의미는 '탐침', PC게임 스타크래프트에 등장하는 프로토스 종족의 탐사유닛을 떠올리면 됩니다.

1982년 출시된 스바루 '브렛(Brat)'은 남자 이름인데, 프로레슬러 브렛 하트가 생각나는군요. 3위를 차지했습니다. 2위는 이스즈의 SUV '비히크로스(VehiCROSS)'입니다. "쓸데없이 대문자를 남용했으며 깊은 인상도 주지 못하는 이름"이라는 게 이윱니다.

그렇다면 영예(!)의 1위는? 포드의 '어스파이어(Aspire)'입니다. 아시다시피 이 차는 기아자동차에서 만든 소형차 '아벨라'의 미국판인데요. 최대출력이 63마력에 불과합니다. 어스파이어의 사전적 의미는 열망하다. 포부를 가지다 등인데 '차급에 비해 너무 거창한 이름'이라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카즈닷컴은 미국 소비자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자동차 평가 매체입니다. 우리나라의 현대기아자동차도 카즈닷컴이 선정하는 '좋은' 시상식에 자사 차량의 이름이 오르면 자료를 내곤 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다소 주관적인 차이름 평가를 올리고 보도자료로 만들어 미국 언론에 뿌린 이유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연말을 맞아 내놓은 단순히 흥밋거리로 봐야하는 건지, 그러기엔 매체의 영향력이 너무 크다는 게 우려됩니다.

한경닷컴 이진석 기자 gene@hankyung.com
☞블로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