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북 전쟁 때다. 하루 전만해도 건장한 군인들이었지만 전투를 치르고 야전병원에 실려 온 그들은 사지를 절단해야했다. 절단된 환자를 돌보던 군의관 미첼이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팔 다리가 절단되어 없어진 후에도 환자들은 절단면뿐 아니라 절단되어 없어져 보이지 않는 부분에도 마치 팔 다리가 붙어 있는 것처럼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던 것.
"진실로 이것은 엄청나게 이상한 일이다. 수개월 전에 다리가 절단된 환자가 이미 절단되어 없어진 다리 부위에 통증을 느낀다고 비통하게 호소했는데, 이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듣지 않고는 그것을 믿기 힘들 것이다."
사지가 절단되어 없어진 후에도 마치 실존하는 것처럼 계속 감각을 느끼는 이 상태를 '팬텀 신드롬(phantom syndromeㆍ환상증후군)'이라 불렀다.
그 후 의학계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뇌에 각인된 신체의 이미지 중 그 일부가 후천적 사고 등으로 갑자기 없어졌다 해도 마치 그대로인양 그 이미지가 없어지지 않고 환상적 감각으로 남아있는 증상'을 병으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팬텀 신드롬은 특별난 사람들의 특별한 증상이 아니다. 사지가 절단된 환자들 중 약 80% 이상이 경험하는 일반적 현상이다.
팬텀 신드롬은 육체의 병이 아니라 일종의 ‘상념(想念)의 병’이다. 사지가 멀쩡해도 정신적으로 팬텀 신드롬에 빠진 사람들이 많다. 이른바 '내가 왕년에 말이야...' 병.
어쩐 노년의 신사는 사석에서 이유 없이 엄지를 까딱이는 버릇이 있었다. 알고 보니 그는 전직 고위관리였다. 수십 년간 고위직에 몸담으면서 집무실 책상의 벨을 엄지로 눌러 사람을 부리던 습관이 퇴임 후에도 지속되고 있었다.
'김 선생!'하고 부르면 대꾸도 없다가 '김 총장!' 해야 그제야 뒤를 돌아보는 이도 있다. 현재 머릿속에도 한창 때의 요직에 머물러 있다는 증거다. 한때의 영광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어 상대방에게 여전히 전관예우를 바라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절단된 사지가 여전히 살아있는 것으로 착각하듯이, 없어진 걸 없다고 받아들이지 못해서 팬텀 신드롬이 생긴다. 체념할 때 체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퇴직을 하거나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서면, 먼저 전화번호부부터 정리하여 매년 절반씩 줄여보시라. 그리고 만나는 사람이나 횟수도 절반으로 줄여 나가보시라.
꽃이 피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하지만 지기는 너무 쉽다. 아쉽지만 이게 삶의 순리다.(hoo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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