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진 않을 거야.하다못해 난 너보다 틀니도 먼저 끼게 될 거고 환갑 잔치도 먼저 하게 될 거야.그래도 자신 있어?"(채영)

"지금 당장 어떤 결과를 기대 하는 건 아니에요. 기회를 주세요. 저보다도 누나를 더 사랑할 자신 있어요. "(준혁)

1998년 개봉했던 안재욱,김혜수 주연의 영화 '찜'의 마지막 대사다. 극중 안재욱은 친구의 누나를 오랫동안 짝사랑해 오다 급기야 여장까지 해가며 사랑을 챙취한다는 내용이다. 그때는 여장을 해서 다가가야 할 정도로 연하남에 대한 거부감이 컸나 보다. 불과 10년 전 얘기다.

2010년 새해를 열흘 앞둔 지금은 어떤가. 연극 '19 그리고 80'처럼 60살 정도는 차이가 나야 사람들의 눈길이 간다. 그만큼 '연하남'은 진부한 주제다. 이젠 남녀관계에서 여자의 나이가 남자보다 많다는 점은 흠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골드미스들이 만나는 연하남은 군대도 안 갔다 온 솜털 보송보송한 남자가 아니다. 30대 초중반이면 어리광 부리기에는 스스로도 부담스러운 나이 아닌가. 골드미스가 말하는 연하남의 매력,현재 연하남과 사귀거나 사귀어본 경험이 있는 6명을 심층 취재했다.

누나의 심장을 뛰게 하다

군대 갔다 온 복학생들이 여자 후배들을 위해선 망설임 없이 지갑을 여는 것은 당연지사.'오빠~' 하는 콧소리에 빛의 속도로 반응한다. 이는 남녀의 입장을 바꿔놓아도 비슷하다.

5년차 호텔리어 박은지씨(32 · 이하 가명)는 석 달 전 세 살 연하남을 만났다. 연하는 남자로 취급도 안 했지만 지금은 멋진 티셔츠,넥타이만 보면 주저없이 신용카드를 꺼낸다. 박씨는 "연하남은 이래라 저래라 고리타분하게 굴지 않고 지금 내가 재밌어 하는 것을 함께 재밌어 한다"며 "감정이 격렬한 것도 마음에 든다"고 설명했다. 그는 "나이 많은 사람은 머릿속으로 이리저리 재는 게 눈에 보이지만 연하남은 솔직하고 저돌적"이라며 "여자의 스펙을 마트 진열대의 상품 보듯 살펴보고 계산기 두드리는 30대 중후반 남자들보다 훨씬 낫다"고 잘라말했다. 박씨는 별명이 '연하남 킬러'인 친구도 있다고 귀띔했다. 그 친구는 막내로 자라 연하남을 동생처럼 챙겨주는 게 행복하고 남자가 철없는 소리를 해도 마냥 귀엽단다. "친구의 직업은 고등학교 교사지만 연하남이 좋아 고등학교로 간 건 아니에요. "(웃음)

섬유회사 기획팀에서 근무하는 유은선씨(34)는 동갑내기 남친과 100일째 연애 중이다. 하지만 유씨는 요즘 지난해 헤어진 세 살 연하남의 전화번호를 만지작거린다. 유씨는 "연하남과 사귈 때는 내 손으로 밥을 먹어본 적이 없을 만큼 다정했다"며 "지금 남자 친구의 무뚝뚝함을 볼 때면 예전 연하 남친이 미치도록 보고 싶다"고 말했다.

파티플래너 박선희씨(33)는 연하남의 매력에 대해 단도직입적으로 '성생활'을 꼽았다. "연상은 첫 성관계를 갖고 난 후 6개월이면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어 여전히 '쌩쌩한' 연하와 대조를 이룹니다. (골드미스들이) 다들 내색은 안 하지만 연하에게 끌릴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죠."

연하남vs연상남=선인장vs액정보호장치?

연하남을 만나면 마냥 행복할까. 아니다. 인터뷰를 했던 여성 중 단 한 명을 제외한 다섯 명이 "마음고생을 한다"고 털어놓았다. 박선희씨는 "(내가) 어려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인다"고 토로했다. "예전에 사귀었던 네 살 연하남의 친구들을 만난 적이 있어요. 주변에 예쁘고 어린 여자들이 드글드글 하더군요. 그들에게 뒤져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엄습했죠."박씨는 또 "질투심이 많은 편인데 연하남에게 그런 점을 걸리면 자존심 상하니 항상 쿨한 척한다"고 말했다. "보통 연하남은 연상녀의 고민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다"고 기자가 떠보자 박씨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연기가 좀 되는 거죠."

경제력에 관한 문제점도 제기됐다. 유은선씨는 "여자들은 분위기도 잡고 싶고 좋은 곳도 가고 싶어 한다"며 "연하남의 연봉이 나보다 적거나 사회초년생,대학원생이면 연상만큼 편하게 말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매번 김밥천국만 갈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렇다고 제가 낸다고 하면 자존심 상해할까봐 망설여져요. 그나마 연하남이 차가 있다면 나은 편이지만 차도 없으면 이 나이에 역세권 위주로 걸어다녀야 하죠."(웃음)

여성을 배려하는 센스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나왔다. 은행원 정재은씨(31)는 연하남과 연상남의 차이점을 간단히 설명했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서 일하니 눈 아프다고 하면 연하남은 전자파 차단되라고 몇천원짜리 선인장을 사주지만 연상남은 값비싼 모니터 보호액정을 배달시켜 주죠.연상남에겐 생일 때 40만원짜리 샤넬 귀고리를 선물받은 적도 있지만 연하남은 이니셜 새긴 핸드폰 고리를 사주는 식이죠."

연애는 연하랑 해도 결혼은 연상과 한다?

인터뷰에 응한 6명 모두 "철없는 연하남보다 이기적인 연상이 더 싫다"고 입을 모았다. 유은선씨는 "말도 안되는 논리로 항상 자기만 옳다고 우기는 남자를 보면 환장한다"며 "연하남의 잔소리는 귀여운 맛이라도 있지만 연상남은 '넌 틀렸어!'라며 권위적으로 누르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골드미스들의 연하 애인은 기본적으로 30세 이상이기 때문에 경제력이나 직업 유무 등 일반적으로 연하남을 반대하는 이들이 제시하는 문제점들이 해소된 점도 주목할 만하다.

결혼에 대한 다양한 남녀의 심리를 다룬 '결혼심리백서'(야마다 마사히로 · 시라카와 도코 지음,이덴슬리벨,2008)에서도 이를 뒷받침하는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연상연하 커플 가운데는 연하의 남편에게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으며,동갑이나 연상의 상대보다 마음이 편하고 듬직하다는 여성들이 많았다. 오히려 같은 연령대의 남편과는 마찰을 일으키는 경우가 생기거나 미묘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는 경우가 많았다. '

포토그래퍼 김인철씨(33)는 세 살 연상인 웹디자이너 홍수진씨(36)와 2년 동안의 열애를 마치고 다음 달 결혼한다. 김씨는 "연상녀는 생각이 깊고 배울 점이 많다"며 "챙김을 받는 게 좋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의지하게 된다"고 말했다. 홍씨의 답변도 의외였다.

"연애를 하면서 이 남자가 연하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거의 없어요. 책임감이 강하고 말과 행동도 신중하거든요. 물론 이 남자를 20대 시절에 만났다면 어땠을지 모르죠.주위에서 연하남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시절은 지난 만큼 듬직한 30대 연하남은 골드미스만의 특권 아닐까요?"(웃음)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