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헤라클레스' 장미란(26 · 고양시청)이 지난달 말 끝난 '2009 세계역도선수권대회' 여자부 최중량급(+75㎏) 용상에서 세계신기록을 들어올렸다. 자신의 몸무게(115㎏)보다 무려 62㎏이나 많은 187㎏을 번쩍 든 장미란의 괴력은 어디서 나왔을까. 물론 매일 흘린 땀의 대가일 게다. 하지만 그가 신은 역도화가 첨단 과학의 산물이자 신기록의 든든한 버팀목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역도는 고도의 운동 역학을 적용한 스포츠다. 안정적 출발 자세,효과적인 중심 잡기 등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근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필수다. 이를 위해 힘을 최대로 키울 수 있는 좌우 근력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체육과학연구원은 2006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장미란의 자세가 부자연스럽다는 점을 발견했다. 근육 활동을 분석하는 근전도 분석법(EMG)을 실시한 결과 장미란이 역기를 들어올릴 때 근력이 약한 오른쪽 다리를 뒤로 10㎝가량 빼는 것을 찾아낸 것.

장미란이 중학교 때 교통사고를 당해 오른쪽 다리 근력이 약해져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체육과학연구원과 역도대표팀은 1년여 동안 장미란의 좌우 균형을 맞추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장미란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부터 나무로 된 뒷굽이 달린 새 역도화(아디스타 역도 · 사진)를 신었다.

100㎏ 이상 되는 바벨을 드는데 신발 뒷굽이 나무라니.장미란은 나무 굽을 조절해 좌우 근력의 균형을 찾았다. 보통 뒷굽의 높이 차이에 따라 신체에 가해지는 중량 부하가 달라진다. 역도화 뒷굽의 높이가 높은 쪽에 더 많은 힘이 쏠린다는 얘기다. 예컨대 좌우 다리의 최대 근력이 각각 100㎏인 선수는 이론적으로 200㎏을 들 수 있다.

하지만 뒷굽의 높이에 차이가 있어 우측 다리는 55%의 중량 부하를 받고 좌측 다리는 45%의 중량 부하를 받는다면 200㎏을 들을 수 없다. 오른쪽 다리에 105㎏의 무게가 쏠려 일어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장미란도 마찬가지였다. 오른쪽 다리와 왼쪽 다리의 근력이 달라 굽의 높이에 미세한 차이를 준 것이다.

나무 굽을 사용하는 또 다른 이유는 반발력을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서다. 역기를 드는 순간 선수의 신발은 300㎏이 넘는 무게를 지탱해야 한다. 이때 역도화는 선수가 지면에 가한 힘을 효과적으로 반작용시켜 바벨을 드는 데 도움을 준다. 나무 뒷굽은 탄성이 강해 반발력을 흡수하지 않고 대부분 선수에게 돌려준다.

문영진 체육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역도화는 충격을 흡수하지 않고 힘을 선수의 몸에 그대로 전달해줘야 한다"며 "충격완화층이 없는 딱딱한 나무 재질이 예전 가죽 재질의 뒷굽보다 훨씬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아하! 스포츠 과학 수사대]187kg 번쩍…장미란의 버팀목은 '나무굽'
또한 나무 뒷굽은 엄청난 무게의 바벨을 들어올리는 선수의 무게 중심을 잡아준다. 보통 신발처럼 뒷굽에 쿠션이 있으면 역도선수는 중심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나무 뒷굽이 일종의 지지대 구실도 해주는 것이다.

현재 장미란을 지도하고 있는 최종근 코치(고양시청)는 "나무 뒷굽 신발이 장미란의 성적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됐다"며 "실제 경기에서 100% 효과를 내기 위해 연습할 때도 나무굽 역도화를 신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나무굽 운동화는 특히 장미란의 탁월한 무릎 근력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고 덧붙였다. 장미란은 하체,특히 무릎의 힘이 뛰어나다. 용상에서 바벨을 들어올릴 때 무릎을 살짝 굽혔다 펴는 이른바 '이중 무릎 굽힘 동작'이 탁월하다. 이런 무릎 힘 때문에 장미란은 제자리뛰기를 60㎝나 뛴다. 웬만한 농구 선수만큼 점프를 하는 것이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