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폭스바겐의 일본 스즈키자동차 인수 발표를 계기로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빅뱅'이 가시화하고 있다. 작년 말 시작된 경기침체의 파고를 넘지 못한 업체들이 경쟁력을 상실,대형 업체에 잇따라 흡수되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친환경차와 신흥시장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주요 업체간 합종연횡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빅뱅 진원지는 유럽 및 중국업체

짝짓기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유럽업체들이다. 경기침체에 따른 타격이 GM과 같은 미국업체만큼 크지 않았던데다 비용절감에 주력한 덕분에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어서다. 폭스바겐은 스포츠카 업체인 포르쉐에 이어 소형차에 강점을 갖고 있는 스즈키까지 인수,스코다 아우디 벤틀리 등 전 라인업을 아우를 수 있게 됐다. 주요 자동차업체들을 잇달아 인수,엔진 등 핵심 부품을 공동 개발해 원가를 대폭 낮출 수 있게 됐다.

프랑스의 푸조시트로앵은 미쓰비시자동차의 지분 30~50%를 인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양사의 글로벌 생산량은 440만대 수준으로,현대 · 기아자동차(약 450만대)와 맞먹는 '거대 동맹'이 탄생하는 셈이다. 푸조는 이미 미쓰비시와 전기차 분야에서 협력해 왔으며,러시아엔 합작 공장을 설립 중이다. 프랑스 1위업체인 르노그룹은 이미 닛산의 지분 44.4%를 갖고 있다. 이탈리아의 피아트는 지난 6월 유동성 위기를 맞은 미국 크라이슬러의 지분 20%를 인수했다.

중국 기업들도 미국 기업이 갖고 있던 브랜드 인수에 잇따라 나서고 있다. 지리자동차는 포드 산하 볼보를,베이징자동차는 GM 산하 사브를 각각 인수하겠다고 밝혔다. 독일내 라이벌인 다임러와 BMW는 비핵심 부품을 공용화하고 플랫폼을 공유하기로 하는 등 인수 · 합병(M&A) 외에도 다양한 합종연횡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친환경차와 신흥시장에서 승부"

1990년대 후반 대규모 합종연횡에 나섰던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또다시 '연합작전'에 돌입한 것은 친환경차 및 신흥시장 비중이 커지는 등 환경이 급변하고 있어서다. 단기에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지분 인수가 가장 빠르다는 설명이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폭스바겐과 스즈키 간 제휴로 폭스바겐은 저가차 생산 기반을,스즈키는 디젤차 기술을 단번에 확보할 수 있게 됐다"며 "현대차와 피아트 등이 우세를 보이고 있는 소형차 시장을 적극 공략할 수 있게 됐다"고 10일 진단했다.

향후 수년간 연비가 좋은 소형차 및 신흥시장에서 승부가 갈릴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폭스바겐은 스즈키 인수로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중국뿐만 아니라 인도 시장도 장악할 수 있게 됐다. 스즈키와 인도 정부의 합작사인 마루티-스즈키는 인도에서 50% 이상의 점유율로 2위 현대차(약 20%)를 여유있게 앞서 있다.

중국업체들은 선진업체 인수를 통해 앞선 기술을 확보,세계 최대로 성장한 자국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계산이다. 또 아프리카와 같은 저가차 시장 위주로 판매량을 확대하고 있다. 체리자동차는 이집트에서 올해 처음으로 점유율 4위로 올라섰다.

반면 현대 · 기아차와 도요타 등은 기존 업체를 인수하는 대신 해외공장 증설과 마케팅 강화로 판매를 늘린다는 전략이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자동차학)는 "유럽과 일본 중견업체간 활발한 짝짓기로 친환경차와 신흥시장에서의 경쟁이 훨씬 치열해졌다"며 "올해 환율효과 덕을 톡톡히 봤던 현대 · 기아차로선 내년이 중요한 고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