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슈퍼 박테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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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미국 보스턴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발생한 화재로 심한 화상을 입은 환자에게 미국 정부는 임상실험 중이던 '페니실린' 사용을 허가했다. 화상 등으로 인해 포도상구균에 감염되면 대부분 패혈증으로 죽던 상황에서 이 환자는 거짓말처럼 완치됐다.
페니실린은 1928년 영국 세균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이 발견했으나 분리 정제가 어려워 쓰이지 않다가 처음 상용화된 것이다. 이후 페니실린은 폐렴 매독 등 난치병으로부터 많은 사람들을 구해냈다.
항생제는 인체에 별 해를 주지 않으면서 특정한 종류의 박테리아를 박멸하는데 큰 효과를 보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문제가 생겼다. 박테리아들이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키우면서 진화했기 때문이다. 포도상구균 계통의 일부 균주들은 이미 1945년부터 페니실린 분해 효소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요즘에는 포도상구균의 95%가 페니실린에 저항성을 보인다고 한다.
메티실린 앰피실린 등 고단위 인공 페니실린도 개발 초기엔 효과를 내다 얼마 있으면 세균들이 끄떡도 하지 않는 상황이 반복됐다. 급기야 반코마이신 같은 초강력 항생제에 내성을 보이는 세균이 등장했다. 이른바 '슈퍼 박테리아'다. 1996년 일본에서 출현한 이래 각국에서 여러 형태로 나타났다. 이제는 유럽연합(EU) 내에서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로 인한 희생자가 매년 2만5000명에 달하며,이는 자동차 사고로 숨지는 사람의 절반을 넘는다고 한다.
이처럼 어떤 항생제도 듣지 않는 환자가 속출하자 유럽의학계는 슈퍼 박테리아로 인류 건강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경고까지 내놨다. 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ECDC)가 최근 100여명의 의사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절반 이상이 지난 6개월 사이 슈퍼 박테리아에 감염된 환자 1명 이상을 진료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는 게 근거다. 주잔나 야캅 ECDC 소장은 항생제가 무력화되면서 수술 및 이식,집중 치료 분야는 아예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고 섬뜩한 지적을 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항생제 오 · 남용이 유독 심하다는 점이다. 감기만 걸려도 항생제 주사를 맞아야 안심하는 습성이 있는 탓이다.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의 병원감염률도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높다. 이렇다 보니 세균과의 전쟁 마지노선이 우리나라에서 무너질 확률이 높다는 우려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신종 플루 못지 않게 슈퍼 박테리아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페니실린은 1928년 영국 세균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이 발견했으나 분리 정제가 어려워 쓰이지 않다가 처음 상용화된 것이다. 이후 페니실린은 폐렴 매독 등 난치병으로부터 많은 사람들을 구해냈다.
항생제는 인체에 별 해를 주지 않으면서 특정한 종류의 박테리아를 박멸하는데 큰 효과를 보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문제가 생겼다. 박테리아들이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키우면서 진화했기 때문이다. 포도상구균 계통의 일부 균주들은 이미 1945년부터 페니실린 분해 효소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요즘에는 포도상구균의 95%가 페니실린에 저항성을 보인다고 한다.
메티실린 앰피실린 등 고단위 인공 페니실린도 개발 초기엔 효과를 내다 얼마 있으면 세균들이 끄떡도 하지 않는 상황이 반복됐다. 급기야 반코마이신 같은 초강력 항생제에 내성을 보이는 세균이 등장했다. 이른바 '슈퍼 박테리아'다. 1996년 일본에서 출현한 이래 각국에서 여러 형태로 나타났다. 이제는 유럽연합(EU) 내에서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로 인한 희생자가 매년 2만5000명에 달하며,이는 자동차 사고로 숨지는 사람의 절반을 넘는다고 한다.
이처럼 어떤 항생제도 듣지 않는 환자가 속출하자 유럽의학계는 슈퍼 박테리아로 인류 건강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경고까지 내놨다. 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ECDC)가 최근 100여명의 의사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절반 이상이 지난 6개월 사이 슈퍼 박테리아에 감염된 환자 1명 이상을 진료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는 게 근거다. 주잔나 야캅 ECDC 소장은 항생제가 무력화되면서 수술 및 이식,집중 치료 분야는 아예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고 섬뜩한 지적을 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항생제 오 · 남용이 유독 심하다는 점이다. 감기만 걸려도 항생제 주사를 맞아야 안심하는 습성이 있는 탓이다.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의 병원감염률도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높다. 이렇다 보니 세균과의 전쟁 마지노선이 우리나라에서 무너질 확률이 높다는 우려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신종 플루 못지 않게 슈퍼 박테리아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