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년 성장률을 5%대로 제시하면서 낙관론이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다. 5%대의 성장률은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 4%대를 웃도는 것이어서 내년이면 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본궤도에 진입할 것이라는 기대를 불러일으키게 한다. 하지만 민간 연구소와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수치가 불러오는 착시 현상,이른바 '지표 경제의 함정'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성장률 3년 평균으로는 3% 안돼

KDI는 내년 우리 경제가 올해에 비해 5.5%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기획재정부 역시 내년 5% 안팎의 성장률을 점치고 있다. LG경제연구원 4.6%,금융연구원 4.4%,삼성경제연구소 4.3%,현대경제연구원 3.9% 등 민간 연구소에 비해 다소 높은 수준이다. 민간 연구소들은 정부와 KDI의 낙관적 전망이 글로벌 경제 회복세와 민간 소비 및 설비투자 증가세를 감안하면 실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5%대 성장이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는 게 민간 연구소들의 지적이다. 올해가 워낙 저조한 탓에 상대적으로 내년 성장률이 크게 보인다는 얘기다. 이른바 기저 효과에 따른 착시 현상이다. 올해 성장률은 사실상 제자리걸음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상무는 "지난해 2.2% 성장,올해 정체를 감안하면 내년에 6% 성장한다 하더라도 3년 평균은 3%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우리 경제가 최대한 성장할 수 있는 잠재성장률 4%대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다.

◆고르지 않은 성장이 더 문제

성장률보다 더 큰 문제가 양극화다. 자동차 휴대폰 LCD 등 수출업종은 환율 효과에 힘입어 호황에 가까운 상태인 반면 내수업종은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3분기 기영경영 분석'에 따르면 제조업체의 매출액 대비 세전 순이익률은 11.1%로 5년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서비스업의 영업이익률은 4.1%로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전체 성장률에 대한 기여도 측면에서도 양극화를 확인할 수 있다. 지난 3분기 성장률이 작년 3분기 대비 0.9%인데 순수출이 5.3%포인트 기여한 반면 내수는 4.4%포인트 갉아먹었다.

하지만 고용 측면에서 취업자의 70% 이상이 내수업종에 몰려 있어 수출업종의 선전이 전체 국민들의 체감도 개선으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 일부 대기업은 연말에 두둑한 보너스를 지급한다고 하지만 중소기업 자영업 등의 종사자에겐 남의 나라 얘기이고 오히려 고용 불안과 임금 삭감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5%대 자체도 불확실"

내년 성장률로 4%대를 제시한 민간 연구소들은 KDI의 5.5%와 비교해 가장 큰 차이는 설비투자와 민간소비 증가율 전망에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KDI는 내년 설비투자와 민간소비 증가율을 각각 17.1%와 4.9%로 관측했다. 하지만 LG경제연구원의 경우 이를 각각 9.7%와 3.9%로 전망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7.5%와 2.9%,삼성경제연구소는 8.2%와 3.1%를 제시했다. 민간 연구소들은 KDI의 전망에 대해 "그 정도까지 가능할지 회의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상무는 "가계부채가 많은 상황에서 내년 금리가 상승하면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질 것"이라며 "이는 성장에 상당한 제약 요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이날 '미국 금융불안 진단과 시사점'이란 보고서를 통해 미국 금융회사 파산 문제가 재점화하고 있어 한국의 수출과 경제 회복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민간 연구소들은 이 때문에 각종 출구 전략을 모색하되 실제 실행에는 신중을 기하고 서서히 시행에 옮겨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