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차가 대세라는 점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듯하다. 하지만 구체적인 전략으로 들어가면 의견이 분분하다. 유럽업체들은 탄소 배출량 감축과 연료 효율을 높이기 위한 최선의 선택으로 클린 디젤을 꼽는다. 반면 도요타 등 일본업체는 오랫동안 하이브리드카에 공을 들여왔다. 닛산,GM 등은 단계를 한꺼번에 뛰어넘어 전기차 시대가 생각보다 빨리 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자동차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주목받고 있는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한국자동차학회 주최로 24일 인천 송도에서 개막한 정기학술대회에서 선우명호 학회장(한양대 교수)과 박영후 보쉬코리아 사장에게서 해법을 들어봤다.


▼지식경제부가 전기차 양산을 서두르고 있는데.

"친환경차가 왜 대두됐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국 정부가 자동차 산업에 요구하는 규제는 크게 3개다. 탄소배출량을 감소시키고,연료 효율을 높이며,안전성을 높이라는 것이다. 전기차가 최종 대안이 될 것이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당장 현실화시키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이에 비해 유럽,미국 등 각국 정부가 제시한 가이드 라인은 이미 나와 있다. 이를 만족시킬 만한 현실성 있는 친환경차를 육성하는 게 중요한 과제다. "(선우명호 교수)

"그런 점에서 보면 현실 가능한 대안은 클린 디젤이다. 대형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나 세단을 전기의 힘만으로 운행시키려면 2020년이 지나도 힘들다. 하이브리드카는 한때 유행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디젤 엔진만으로 탄소배출을 감축시키고,연료 효율을 높일 수 있는데 구태여 무겁고 비싼 배터리를 장착할 까닭이 있겠는가. 물론 전기차가 친환경차의 미래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보쉬가 삼성SDI와 공동으로 2차전지 업체를 만든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박영후 사장)

▼국내에선 디젤 엔진이 상대적으로 소외된 느낌이다.

"현대 · 기아차의 디젤 엔진은 '월드 클래스' 수준이다. 이를 제대로 알리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박 사장)

▼전기차 시대에 대비하려면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으로 보는지.

"전기차 시대의 모습은 기존의 내연 엔진 자동차 시대와는 완전히 달라질 것으로 본다. 하다못해 엔진에서 발생하는 동력을 통해 작동하는 에어컨도 전기차에 맞게 개조돼야 한다. 특히 기초 과학이 중요하다. 전기차를 비롯 친환경차의 미래를 앞당기기 위해선 학계에서 다양한 연구 성과가 나올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특정 기업에 얼마를 나눠주면 성과가 나올 것이란 안일한 생각으로는 안 된다. "(선우 교수)

"미국 정부가 전기차에 '올인'하다시피 하는 것도 기초 과학 분야에서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완제품에선 어느 정도 성공했어도 부품 소재 분야에선 일본,독일 등에 주도권을 뺏기곤 했다. 한 분야에 끈기 있게 장기 투자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기차에서 성공하려면 당장의 성과에 집착하지 말아야 할것으로 본다. "(박 사장)

▼자동차산업의 격변기다. 한국엔 기회인가,위기인가.

"넓게 보면 분명히 기회다. 유럽은 디젤 엔진에,일본은 하이브리드카에,미국은 전기차에만 집착하고 있다. 한국은 특정 분야에 한정하지 않고,모든 대안을 균형 있게 고려해야 한다. 문제는 분야마다 상당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정부 지원이 절실한 것이다. "(선우 교수)

"한국은 반도체 강국이고,IT(정보기술) 산업에서 세계를 주도하고 있다. 이 같은 장점을 살린다면 얼마든지 친환경차 시대에서도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런 점에서 삼성전자가 자동차 전자장치의 핵심인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 뛰어든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지금은 독일 인피니온 등에 뒤져 있지만 메모리 반도체에서 세계 1위를 석권한 저력이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박 사장)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