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업은 때가 되면 그냥 물려줄 수 있는 유산이 아닙니다. 가족 구성원 전체가 가업 승계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차근차근 준비해야 성공적으로 대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

호주의 대표적인 가업승계기업인 데니스 패밀리 코퍼레이션(DFC)의 창업자 버트 데니스 회장(74)은 19일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가업은 특정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고 가족 구성원 전체에게 승계시킬 때 가장 큰 시너지효과를 낸다"며 이같이 밝혔다. 버트 회장은 "DFC는 네 명의 자녀들이 어렸을 때부터 가업승계 작업에 착수했으며,현재 자식세대에 이어 손자세대로의 가업승계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버트 회장을 비롯해 부인 돈(72),아들 그랜트(48),손녀 타라(23) 등 데니스가(家)의 3세대는 19~21일 서울 전국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리는 '2009 가업승계 지속성장 국제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중소기업청과 중소기업중앙회가 공동 주최하는 이번 행사는 한국중소기업학회가 주관하고,한국경제신문이 후원하고 있다.

DFC는 1960년 창업한 토목건설 및 컨설팅 전문회사로 지난 반세기 동안 가족경영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호주의 몇 안 되는 대표 가족기업(family business).DFC는 창업 초기 관급토목공사 하청업으로 출발해 현재 토목건설,쇼핑몰 운영 등 유통,농장사업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2억5000만호주달러(약 2500억원).DFC는 창업주 버트와 부인,장녀 아델(50),아들 그랜트,차녀 나탈리(46),삼녀 마샬(44)이 회사 지분의 6분의 1씩을 소유하며 이사회 멤버로 공동경영을 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직은 그랜트가 맡고 있다.

버트 회장은 동업의 한계를 경험한 후 창업 초반기부터 DFC를 가족경영 형태로 운영할 결심을 했다. 이후 자녀들에게 사업자금을 빌려주면서 경험을 쌓게 하는 등 체계적인 훈련을 시킨 뒤 대학 졸업 후 회사 경영에 합류시켰다. 1992년 큰딸 아델을 시작으로 4명의 자녀는 순차적으로 경영에 참여했다.

버트 회장은 "데니스 가문의 자손들은 본인이 원한다면 사명선언문(mission statement)에 서명한 후 가족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DFC의 사명선언문은 장기적인 회사경영,주식시장 비상장 등 비공개,다음 세대에 계승하자는 세 가지 원칙을 담고 있다. 경영에 참여하는 가족구성원이 동일 지분을 보유하는 것은 DFC 경영의 근간.따라서 버트와 돈이 보유한 지분(약 33.3%)은 은퇴 후 가족구성원에게 같은 비율로 분배된다. 함께 방한한 손녀 타라는 "내년 졸업 후 약간의 경험을 쌓은 뒤 DFC에 입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랜트는 DFC가 호주 여러 대학의 연구 주제가 될 정도로 대표 가족기업으로 꼽힌 것에 대해 "자녀들이 어렸을 때부터 사업 감각을 가질 수 있도록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데다 이 과정에서 가업을 삶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수용하게 된 것이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 듯 싶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 전문경영인을 영입해 봤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경기에 따라 부침이 심한 DFC의 업종 특성상 가족경영이 장기적 안목을 갖고 사업하는 데 유리한 측면이 있다는 분석이다.

버트 회장은 가족경영에 착수한 후 가족들에게 '사업은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고,가족을 통합하고 연결시키는 매개체'라는 점을 강조해 오면서 두 가지 불문율을 제시했다. 주거지는 회사에서 5분 이내에 위치할 것,매일 점심은 가족과 함께 하는 것 등이다. 부인인 돈은 "지난 10년째 가족들이 점심을 함께 하면서 서로 친밀감을 확대하고 서로 간의 사소한 오해도 말끔히 풀곤 한다"고 설명했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