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위 생명보험사인 삼성생명의 상장은 증권시장이나 보험업계뿐 아니라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삼성그룹 계열사들은 10년을 끌어 온 삼성자동차 채무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삼성차 부채 해결 앞당겨

삼성생명 상장은 삼성그룹의 숙원 과제다. 삼성그룹은 1999년 삼성차 법정관리로 인한 채권단 손실을 책임지기 위해 삼성생명 주식 350만주를 내놓았다. 삼성생명을 상장한 뒤 매각해 채권단에 2조4500억원(주당 70만원 가정)을 주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이 생명보험 계약자의 몫 배분 문제를 제기하며 반대,상장은 성사되지 못했다. 이 문제는 2007년 해소됐다. 생보사들이 20년간 1조5000억원가량의 공익기금을 출연키로 하자 정부가 계약자 몫을 배분하지 않고 상장할 수 있도록 규정을 고친 것이다.

그러나 삼성생명엔 그룹과 관련된 또 다른 걸림돌이 있었다. 삼성생명이 상장되면 주식 시가평가로 1대 주주인 에버랜드(생명 주식 13.3% 소유)는 삼성생명 주식 가치가 자산 총액의 50%를 넘게 돼 금융지주사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에버랜드가 금융지주사가 되면 자회사인 삼성생명은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주식(7.21%) 일부를 팔아야 한다. 금융지주사는 손자회사로 제조업체의 주식을 갖는 데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에버랜드를 정점으로 한 삼성그룹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 있었다. 이 걸림돌은 지난 1월 이건희 전 회장이 차명으로 보유하던 삼성생명 주식 324만여주를 실명 전환하면서 삼성생명 1대 주주(20.7%)로 올라서 해결됐다. 에버랜드는 삼성생명 지분 가치가 50%를 넘어도 1대 주주가 아닌 만큼 금융지주사로 지정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생보업계에 영향은

삼성생명의 발행 주식은 2000만주로 주당 70만원으로 치면 시가총액은 14조원에 이른다. 이 물량이 시장에 나오면 내년 상장을 추진 중인 대한생명과 미래에셋생명에 부담이 될 수 있다. 대한생명은 상장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2대 주주인 예금보험공사는 회사 가치 하락을 우려해 상장 연기를 주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삼성생명은 상장을 글로벌 금융사로 도약하는 계기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목표인 2015년까지 글로벌 15위 보험사가 되려면 자본 확충을 통한 사전 준비가 필수"라고 말했다. 삼성생명은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시장점유율이 40%(수입보험료 기준)에 달했지만 외환위기 이후 ING 등 외국계 보험사의 공략과 함께 현재 26% 수준으로 떨어졌다. 보험시장 규모도 최근 정체되며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지배구조 재편 신호되나

삼성생명은 이 전 회장이 20.7%의 지분을 보유해 1대 주주이며 이 전 회장을 포함해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모두 45.76%를 갖고 있다. 에버랜드가 SC제일은행에 신탁한 지분 6.0%까지 포함할 경우 51%를 넘는다. 또 자체적으로 삼성전자 지분 7.21%를 갖고 있고 삼성화재 삼성카드 삼성증권 등 계열사 지분을 대거 보유하고 있다.

만약 상장 후 주가가 삼성그룹이 희망하는 주당 80만원까지 오른다면 이 전 회장은 3조2000억원,삼성그룹 전체로는 8조원가량을 손에 쥐게 된다. 삼성생명도 수조원에 달하는 추가적인 공모 자금을 모집할 수 있다. 삼성그룹이 그동안 지주사로 전환하지 못한 것은 막대한 자금이 필요해서였다.

예를 들어 삼성생명이 보험지주사로 전환하려면 삼성전자 지분 7.21%를 매각하든지 아니면 12.7%를 더 사들여야한다. 지주회사법에 따라 자회사로 만들려면 상장사의 경우 지분을 20% 이상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삼성생명 상장이 순환출자로 얽힌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재편 신호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