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나연(22 · SK텔레콤)은 샷을 한 뒤 고개를 떨구는 버릇이 있다. 갤러리들이 혹시 샷을 잘못 했나 착각할 정도다. 미국LPGA투어에서 생애 첫승을 거둔 삼성월드챔피언십 마지막 라운드 18번홀에서도 두 번째 샷을 한 뒤 고개를 숙였었다. 하지만 고국에서 열린 미국LPGA투어 '하나은행 · 코오롱챔피언십'(총상금 170만달러)에서는 달랐다. 첫승의 문턱을 넘어서인지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최나연은 1일 인천 영종도 스카이72GC 오션코스(파72)에서 열린 대회 최종라운드에서 보기없이 버디만 5개를 낚는 흠잡을 데 없는 경기를 펼쳤다. 최나연은 고르지 않은 날씨속에서도 3라운드 합계 10언더파 206타를 기록,청 야니(대만)와 마리아 요르트(스웨덴)를 1타차로 제치고 올시즌(통산) 2승째를 거뒀다.

이번 대회에서는 공교롭게도 삼성월드챔피언십과 비슷한 상황이 재연됐다. 공동 선두를 달리던 요르트가 삼성월드챔피언십에서 미야자토 아이처럼 마지막홀에서 두 번째 샷을 물에 빠뜨린 반면 최나연은 210야드 거리에서 하이브리드(레스큐 19도) 샷으로 볼을 그린앞 4m지점까지 갖다놓았다. 승리를 확신한 최나연은 어프로치샷을 홀 20㎝ 옆에 붙인 뒤 가볍게 버디 퍼트를 성공하며 긴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최나연은 우승을 경험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그는 "첫 우승 때는 손도 다리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렸는데 오늘은 편하고 여유있게 라운드를 펼쳤다"며 "서브 스폰서인 스카이72GC는 여러 차례 연습한 '홈 코스'여서 꼭 우승하고 싶었는데 현실로 이뤄져 기쁘다"고 말했다.

퍼트에도 자신감이 붙었다. 이전에는 홀에 못 미친 퍼트가 부지기수였지만 이날은 대부분 홀을 조금 지나쳤다. 미스샷이 나와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밝게 웃으려 한 점도 달라졌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경기를 안정적으로 풀어가는 법을 터득했다는 얘기다. 최나연은 "예전에는 '퍼트가 안 들어가면 어쩌나' 하는 약한 모습이 있었다"며 "요즘은 샷뿐 아니라 퍼트도 잘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고 강조했다. 최병호씨(최나연 아버지)도 "나연이가 미스샷을 하더라도 다음 샷에서 만회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며 "스스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능력이 커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최나연은 이날 저녁 일본으로 떠날 예정이었으나 사인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갤러리들을 위해 비행기편을 하루 늦췄다.

이날 3타를 줄인 홍 란(23 · 먼싱웨어)은 합계 6언더파 210타로 단독 4위에 올라 '국내파'의 체면을 살렸다. 김송희(21)가 그보다 2타 뒤져 5위를 차지했고,신지애(21 · 미래에셋)는 단독 6위를 기록했다. 모처럼 국내 무대에 선 박세리(32)는 7번홀(파5)에서 이글을 잡는 등 선전한 끝에 공동 7위에 올라 갤러리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영종도(인천)=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