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빵~빠바바바방~' 밤 11시 인도 뭄바이 국제공항.여기저기에서 자동차 경고음이 터져나왔다. 얽히고설킨 차들로 공항도로는 마비 지경이었다. 공항도로를 벗어나자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건물이 나타났다. 골드만삭스가 2020년 세계 경제 4대축의 하나로 꼽은 인도의 금융허브, 뭄바이의 첫 인상은 서구식 금융허브 모습과 거리가 멀었다. 이튿날 오전 7시.인도공대(Indian Institute of Thechnology,이하 IIT) 7개 캠퍼스 중 가장 높은 세계 랭킹을 자랑하는 뭄바이 캠퍼스로 향했다. 인터뷰 약속시간은 9시였지만 체증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일찍 출발했다. 숙소에서 IIT 뭄바이캠퍼스(IITB)까지 거리는 35㎞.1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였지만 9시에 간신히 도착했다. 1970년대 한국 수준의 교통 인프라였다.

◆뭄바이 속의 또 다른 섬,IITB

대나무로 어설프게 엮어 놓은 정문을 지나자 또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영화 '쥐라기 공원'에서 봄직한 짓푸른 녹음이다. IITB 는 혼돈으로 가득찬 뭄바이와 전혀 다른 독립된 섬 같았다.

대학 본관에서 걸어서 15분.남학생 기숙사에 도착했다. 내년에 졸업을 앞둔 수실 신트레(22)는 부끄러운듯 방을 공개했다. 단촐하게 놓인 침대와 책상.그는 같은 학년 룸메이트와 함께 생활했다. 도서관에는 방학인데도 앉을 자리가 없었다. 그는 "수업을 마치면 곧바로 도서관이나 기숙사로 돌아와 공부하기 때문에 낭비되는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교수와 학생이 1년 365일 이곳에서 살다보니 시간과 장소의 제약이 없다. 대외협력처장인 수하시스 쵸두리 교수는 "아무리 악천후라도 수업이 가능하기 때문에 휴강은 없다"며 "일요일 밤 12시에 수업을 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입학생 700명 중 외국 학생 제로

IITB는 해마다 700여명의 학부생을 선발한다. 이 중 외국인은 몇 명일까. 인도에선 IITB에 떨어지면 미국 MIT를 간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지만,의외로 IITB엔 외국 학생이 단 한 명도 없다. 우수 외국 학생 유치를 통해 국제화에 열을 올리고 있는 전 세계 명문대의 트렌드와는 전혀 맞지 않다.

왜일까. 이유는 외국 학생들이 수업을 못 따라와서다. 5년 전 외국 학생들의 입학을 허용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입학 후 수업에 뒤처지면서 문제가 됐다. 지난 2월부터 임기를 시작한 데방 카카 IITB 신임 총장은 "외국 학생을 뽑고 싶지만 우리 수준에 맞는 인재가 없다"며 "심지어 1년에 10명 내외로 선발하는 외국인 교환학생들도 수업을 따라오게 하려면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수백명에 달하는 석박사 과정에도 외국 학생은 25~30명이다. 인도 최고의 인재가 곧 전 세계 최고의 인재라는 자부심이다.

실제로 IIT 입학시험인 JEE(Joint Entrance Exam)는 최고의 학생들만 선발하는 시스템이다. 수재 중의 수재만이 풀 수 있는 JEE는 국내 서울대 학생이 1년 동안 배워야 해결할 법한 수학,물리학,화학 문제들로 구성됐다. 인도 전국에서 고교 12학년을 마치고 JEE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학생은 1200만~1400만명.이 중 수학,과학을 좋아하는 학생이 600만~700만명이 응시하며,상위 1%만이 IIT에 입학할 수 있는 후보군이다.

◆퓨전인재를 길러라

최고 수재들이 모인 IIT는 인도 경제,나아가 세계 경제 인재 보급소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창업자 가운데 15%가 IIT 동문이다. 세계 비즈니스의 정상은 IIT 사람들로 넘친다.

영국 통신업체인 보다폰의 최고경영자(CEO) 아룬 사린,미국 휴대폰 업체 모토로라의 파드마스리 와리어 최고기술책임자(CTO),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공동 창업자 비노드 코슬라 등 포천잡지가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 중 IIT 출신 중역이 없는 기업은 거의 없을 정도다.

IIT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쵸두리 교수는 "세계 어디에서도 성공하는 이유는 학교가 특정 이론이나 기술을 가르치기보다는 '분석능력(reasoning)' 즉 기본에 충실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카카 총장은 "기본에서 문제 해결 능력이 길러진다"고 강조했다.

IITB는 현재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올해부터 인문학,법학,디자인,경영학 등 6개의 새로운 전공 과목들을 개설했다. 공대 과목 이외에 전공도 배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카카 총장은 "그동안 공대 과목들만 복수전공이 가능했지만 과목 선택의 폭을 넓혔다"며 "새로운 학문들 간의 융합을 통해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특히 IITB MBA스쿨과의 벽을 허물었다. 매년 2500명이 지원해 100명만을 선발하는 IITB MBA스쿨은 공대 출신만이 입학 가능하다. 이에 MBA 학생이 학부 수업을 듣고 학부생이 MBA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전 세계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혁신이다. 딜로이트 컨설팅에 근무하다 IITB MBA스쿨에 입학한 아미트 미탈(25)은 "학부생들도 MBA 수업을 들으며 생생한 현장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며 "MBA 출신 역시 졸업 후 기본적으로 연봉이 3배 이상 오를 정도로 몸값이 상승한다"고 말했다.

◆7개 캠퍼스끼리 경쟁

1958년 개교한 IIT는 개발도상국 중 가장 성공적인 고등교육기관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그 비결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에 있다. 인도 정부는 IIT 특별법을 지정해 모든 예산을 지원했다. 처음엔 뭄바이,첸나이,델리,마드라스 등 5개 캠퍼스로 시작했다. 이후 1995년 가우하티,2001년 루르키 등 2개가 더 생겨 현재 7개 캠퍼스로 됐다. 이들 7개의 캠퍼스는 학생 유치,재정 지원,세계 랭킹 면에서 경쟁하면서 협력한다.

인도 정부는 지난해 8개의 새로운 IIT를 만들었다. 기존 7개 캠퍼스들은 이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쵸두리 교수는 "IIT의 각 캠퍼스들은 경쟁과 협력을 통해 성장한다"며 "교수들끼리도 정부 프로젝트 수주를 위해 경쟁하지만 공동으로 연구할 때는 서로 협력한다"고 덧붙였다.

뭄바이(인도)=성선화 기자 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