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내년부터 시행하는 방안을 놓고 당 · 정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 정부는 원칙대로 이들 제도를 내년에 시행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거듭 천명하고 있으나 한나라당 내 당지도부와 소장파,한국노총 출신 의원들은 정부 의지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노동계와 재계,정부 대표가 참석하는 '6자 대표자 회담'이 곧 가동에 들어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낸다는 계획이어서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문제가 어떤 식으로 결말날지 주목되고 있다.

◆여당도 혼선…기류 변화 감지

"복수노조 허용 시기를 전면 재검토할 수 있다"는 한나라당 김성조 정책위 의장의 발언이 알려진 27일 정부와 재계,노동계는 진의를 파악하느라 부산한 움직임을 보였다.

한나라당은 이달 초까지만 해도 '무조건 시행' 쪽으로 당내 의견을 몰아갔다. 안상수 원내대표도 지난달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해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시행을 유보하지 않는다는 게 당론"이라며 시행에 강력한 의지를 보여왔다.


이처럼 시행에 무게 중심을 뒀던 한나라당이 최근 '시행 유예 검토'로 돌아서는 듯한 분위기를 나타내면서 의원들도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시행에 유보 없다"던 안 대표도 이달 들어 "조정 가능성이 있다"로 돌아선 것으로 알려졌다. 안 대표는 최근 기업인과 노동계 대표 등을 잇따라 만나 "어떠한 선택이 경쟁력에 도움이 될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해 탄력적으로 대응할 뜻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 당직자도 "한나라당 당론은 정해진 게 없지만 안 대표를 비롯 의원들의 입장이 바뀌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당내 개혁소장파 모임인 '민본21'(공동간사 권영진 · 황영철 의원)도 지난 26일 성명에서 "노조법 시행은 우리 경제현실과 노동여건 등을 충분히 감안하되 노동계,특히 한국노총과의 정책연대를 되살려야 한다"고 말해 '무조건 시행'에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국노총 출신의 한나라당 김성태 의원은 "복수노조가 우리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하는 의원들이 많다"며 "일단 노동계,재계,정부의 6자간 논의 결과를 지켜본 뒤 결정하자는 게 당내 기류"라고 전했다.

보궐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이 뒤지고 있다는 여론조사가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시행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갖게 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노사가 반대하는 노동법을 밀어붙인다는 인상을 줘 지지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일각에선 보궐선거에 나간 여당 후보들의 지지도가 떨어지는 요인으로 △세종시 이전방안 수정 △복수노조 허용,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강행 △방송인 김제동씨의 MC 교체 개입설 등을 꼽고 있다.

◆노동부 "원칙대로 시행" 고수

노동부는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임금 지급금지 시행과 관련해 더 이상 유예는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임태희 노동부 장관도 "내년 1월 시행이 정부의 원칙적인 입장"이라며 새 노동법 시행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내비쳤다. 노동부의 한 간부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내년 시행엔 변함이 없다"며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 복수노조 전면 재검토 발언을 한 것은 이번 보궐선거를 의식한 게 분명하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노동부 관계자는 "보궐선거지역 여론조사에서 지지도가 떨어지다보니 복수노조와 전임자 문제가 여당의 정치적 계산에 따라 휘둘리는 인상"이라며 "우리나라 노사관계가 글로벌스탠더드로 한 단계 격상되기 위해선 원칙에 입각해 정부의 정책이 결정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노동계가 제안한 6자회담(노동부,노사정위원회,경총,대한상의,한국노총,민주노총)에 노동부가 참여하기로 방침을 정함으로써 정부의 '무조건 시행' 방침이 노사 입장을 고려한 '유연한 시행'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관측도 낳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도 "6자회담은 복수노조 등시행으로 인한 혼란 최소화 방안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며 "이 자리에서 나온 얘기들이 법안에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 장관도 최근 노사관계학회 관계자들과의 간담회에서 "교섭창구 단일화 등을 위한 법 개정이 안됐을 경우 복수노조와 전임자임금 지급금지 조항이 내년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갈 수 있느냐"는 질문에 "좀 생각을 정리한 뒤 답변하겠다"며 유보적 입장을 보였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