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기름값으로 국민들의 불만이 높다. 경기침체와 겹치면서 특히 생계형 자동차 운전자와 영세 자영업자의 고통이 커지고 있다.

정부에선 물가안정과 서민경제를 위해 갖가지 대책을 내놓으면서 기름값 인하를 유도하고 나섰다. 폴사인제 폐지를 비롯해 대형마트의 주유소 진출 허용,주유소 공급가 공개 등이 그런 것인데,정책효과에 대해서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소비자들이 정유업계를 보는 눈이 곱지 않은 이유는 기름값이 한번 올라가면 도무지 떨어질 줄 모른다는 데 있는 듯하다. 과점시장에서 유가를 자의적이고 불투명하게 결정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오랫동안 계속돼 온,기름값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에서 오는 것 같다.

하지만 높은 기름값에 불만을 표시하면서도,기름값이 어떻게 구성돼 있고 어떻게 결정되는지 그 실상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국내 기름값은 단순하게 결정된다. 국제제품가와 환율에 기준하고,시장상황을 감안해 정해진다. 문제는 국제유가와 환율이 항상 같은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국제 휘발유가격은 작년 4월 배럴당 118달러에서 올해 8월 80달러로 32% 하락했다. 반면 같은 기간 환율은 달러당 997원에서 1253원으로 26% 상승했다. 그 결과 국내 휘발유가격은 세금인상 등이 더해져 ℓ당 1698원에서 1670원으로 비슷했다. 환율상승이 휘발유가격 하락을 막은 주원인이 된 경우이다.

최근에 환율이 1200원 밑으로 떨어지고 국제유가도 70달러대로 내려가면서 기름값도 지속적으로 하락해 지난 9일 현재 전국평균 1626원을 기록했다. 이처럼 국내 유가산정의 지표는 일반에게 모두 공개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유업계가 오해를 받는 것은'오를 땐 빨리,내릴 땐 천천히'라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사실 휘발유 소비자가격 중 정유사 공급가는 대략 38% 내외에 불과하다. 나머지 62%가량은 세금과 유통비용 등이다. 세금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해 소비자가격의 대략 53%에 이른다.

이는 정유업계가 국제제품가격과 환율변동을 국내가격에 반영할 때도 소비자가격의 38%밖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국제가격의 하락요인은 큰데 소비자가격은 찔끔 내리고 만다는 소비자들의 오해는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고유가를 틈타 정유사들이 과점시장에서 폭리를 취한다는 주장도 실상과는 거리가 멀다. 작년 정유업계의 정유부문 순이익률은 적자(-0.4%)였다. 올 2분기에도 정유4사 중 3개사가 적자(-1250억원),상반기 기준으로도 순이익률은 1.8%에 불과했다. 우리나라 대기업과 해외 석유메이저의 영업이익률(8~9%)에 비하면 초라한 실적이다.

국내 정유사의 휘발유 세전공급가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국내 유가가 높은 것이라면 언제든지 수입이 늘게 돼 있다. 그럼에도 수입제품이 거의 없는 까닭은 국내 정유사가 낮은 가격에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기름값 인하로 가는 가장 확실한 길이 세금에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정유업계를 둘러싼 환경은 사면초가이다. 내수시장은 정체돼 있고 인도 중국 및 산유국의 수출형 정유시설확대로 수출경쟁력도 위협받고 있다. 반면 정유업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갈수록 깊어만 가고 있다.

석유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석유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석유산업에 대한 정확한 진단에 기초한 지혜로운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오강현 < 대한석유협회 회장 >